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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 ‘여주향교 달빛풍류음악회’여주시는 국가유산청과 경기도가 후원하는 2024년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에 선정, ‘선비의 배움터, 여주향교’ 사업으로 ‘여주향교 달빛 풍류 음악회’를 18일 개최한다.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전국에 소재한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해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국가유산청이 추진 중인 ‘2024년 국가문화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이다. 올해는 여주시의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여주향교를 활용한 ‘선비의 배움터, 여주향교’가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선비의 배움터, 여주향교’ 프로그램은 여주시가 주최하고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與民)이 주관한다. 닫혀있던 여주향교를 생기 넘치는 문화공간이자 인문정신과 청소년 인성을 함양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기획됐다.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여주향교 달빛 풍류 음악회’는 달빛 아래에서 여주향교와 선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문학 토크 콘서트로, 우리 고유 전통문화인 가무악(歌, 舞, 樂)과 함께 풍류를 즐기는 동시에 전통문화예술체험까지 경험하며 색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음악회는 1부 전통문화예술 체험과 2부 여주향교 달빛음악회로 구성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전통문화예술 무료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참가자는 ‘문자도 부채 만들기’, ‘오방색 매듭 팔찌 만들기’, ‘향나무 목걸이 만들기’ 등 3가지 프로그램 중 2개를 선택해 참여할 수 있다.이어 7시부터는 한국형리더십연구센터 대표이자 세종 연구자인 김기섭 대표의 사회 아래 ‘즐거운 국악’을 추구하며 전통 국악은 물론 가요와 팝, 민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연주하는 ‘국악실내악 여민’과 국내 최초 퓨전 국악 오디션 MBN ‘조선판스타’ 준우승자인 소리꾼 정초롱이 출연해 공연한다. 이어 김청우(국립국악원)가 선비의 춤을 선보이고, 여기에 래퍼 아이삭 스쿼브가 함께해 선비의 오덕을 랩으로 표현하는 ‘여주향교 달빛 풍류 음악회’가 진행된다.여주시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여주향교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문화가 결합된 이색 콘텐츠 ‘여주향교 달빛 풍류 음악회’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돼 의미가 새롭다며, 앞으로도 지역문화유산의 보전 및 계승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 콘텐츠를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여주향교 달빛 풍류 음악회’의 참가자는 총 100명으로, 지난 4월 29일 오전 11시부터 사전접수를 통해 80명을 모집하고 있으며 20명은 현장접수를 통해 참여가 가능하다. 참가접수는 여주시청 홈페이지 및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진행되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여민 유선전화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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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예술협회, 한국전통의 맥 '류파별 100인 춤전' 9일(사)한국전통예술협회가 주최하는 '한국전통의 맥 100인전'이 3월부터 6월까지 총 6일간 오후 5시에 서울 전통공연에술진흥재단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올려진다. 전통예술컨텐츠 레파토리 공연물로 3월 21일, 3월 30일, 4월 11일, 4월 27일, 5월 9일, 6월 29일에 열린다. 신진무용가, 중견무용가들의 전통춤에 대한 열정과 기량을 감상할 수 있는 현장이다. 봄향기 완연한 5월 공연은 9일 열리게 되는데, 첫 번째 무대는 이지현(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전수자)이 선보이는 '통영기방입춤'이 문을 연다. 통영기방입춤은 통영권번에서 예기 교육을 위해 추던 기본무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통영 칼춤)의 예능보유자 엄옥자 선생님이 故 정순남 선생님께 사사받아 재구성한 작품이다. 쌍오리 사위, 겨드랑사위, 손춤 등 '승전무'의 춤사위와 유사하며, 아기자기하며 정제된 춤사위가 특징이다. 두 번째 무대는 오민경(춤집단 MIN 대표)이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인다. 국가무형유산 제92호 '태평무'는 강선영(1925-2016)선생에 의해 전해지면서 격조있는 무대예술로 발전 되었다. 태평무는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하고 가볍고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신명, 기량의 과시가 돋보이는 춤으로, 정 중 동의 미적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에 있어서는 경기도당굿에서 행하여진 무속 장단에 바탕을 둔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가락으로 연주되고 있다. 네 번째 무대는 오수연(국가무형유산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자)이 '이매방류 호남검무'를 선사한다.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검을 놓고 어르는 동작부터 칼을 잡고 행하는 춤사위는 무거우면서도 간결하다. 칼을 쓰는 춤이지만 살벌함이 없이 평화롭고 유연한 동작으로 일관된 아름다운 춤이다. 다섯 번째 작품은 황혜영(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이수자)이 선보이는 호남살풀이춤이다. 호남살풀이춤은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운 춤이라 할 수 있다. 깊이 가라앉는 호흡의 춤사위와 엇가락을 타는 긴 수건 한 자락에 한 많은 꿈을 실어 던져버렸다 다시 휘감아 허공에 뿌리면 한 폭의 난을 그린 듯 하며 학이 날아와 앉는 모양을 한다. 이 춤의 특징은 철학 속에 혼이 담긴 춤사위로 기방예인들의 무무(巫舞) 형태인 민속예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맺고 풀어주는 가락에 실어내는 고운 선과 휘몰아 치는 춤사위로, 간결하면서도 시원스럽게 뿌려지는 긴 수건에 인간의 이중 구조적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정·중·동의 미학을 간직한 호남지방의 춤이다. 여섯 번째 작품은 김경은(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이 선보이는 '한영숙-이애주류 승무'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승무는 그 정신과 구성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역사적 몸짓을 바탕으로 그 골격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조선말 한성준 선생에 의해 독자적인 춤으로 정립된 승무의 춤사위 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 생장수장, 우주만물의 이치가 모두 담겨있다. ‘승’은 넓은 의미로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중생’이라는 점에서, 승무는 결국 대승의 세계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춤’이 된다. 일곱 번째 작품은 이봉주(국가무형유산 '승전무' 전수자)가 선보이는 '엄옥자류 수건춤'이다. 엄옥자류 수건춤의 가장 큰 남해안 통영적 특성은 깊고 거친 호흡에 있다. 가벼운 수건 한 장으로 한을 풀어내며 신명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무겁게 툭 떨어지는 호흡, 가볍게 떨어지다 멈추는가 하면 다시 강하게 툭 떨어지는 호흡법은 영남(통영)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볍고 매끈한 호흡이 아니라 답지저앙의 변형인 배김새를 이끌어 내는 강하고 깊은 호흡이야 말로 영남춤의 시작이자 완결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중력에 반하여 떠올리는 발디딤이 무거워 춤이 깊어지고, 거칠고 투박한 어깨짓에 따라 춤을 맺고 멈추고 풀어 남해안 통영지방의 해학적 한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표현하며, 분출하는 강력한 힘의 균형과 조화로 통영춤의 근원적 원형이라 할 수 있겠다. 여덟 번째 작품은 문진수가 '광대소고춤'을 선사한다. 광대 소고춤은 20세기 초 노르베르트 베버 독일 신부가 촬영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에 등장하는 소고춤의 기예와 타법을 발굴, 복원 및 재현하고, 재구성, 재창조한 작품이다. 이 기록영상이 나오기 전까지는 소고는 단순히 농악, 무용, 선소리 등에 등장하는 부수적인 공연요소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광대 소고춤은 소고를 활용한 다양한 타법과 신체의 조화, 화려한 기교와 몸짓의 조화, 춤적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독특한 춤사위로 표현한 특징을 지닌다. 문진수는 대한민국연희춤협회 회장, 국가무형유산 남사당, 발탈, 승무, 우도농악 이수자이다. 마지막 작품은 재인청예술단이 '이동안류 태평무'를 선사한다. '태평무'는 나라의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이동안류 태평무는 재인청 전통을 따라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추는데, 바지춤의 장점이 드러나게 동작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의식을 거행하는 제관(祭官) 같은 위엄과 격식을 갖춘 절제의 멋이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구름 위를 걷듯 출렁이고, 살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사뿐한 발디딤에 무심한 듯 위엄이 깃든 절제된 표정에서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정주미(재인청춤전승보존회 회장), 이종진(재인청예술단 부단장), 성수희(재인청예술단원)가 선보인다. 한국전통예술협회 송미숙(진주교육대학교 교수)이사장은 이 시대의 가무악시리즈 Ⅱ-한국전통의 맥 100인전-류파별 춤전’ 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의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예술생태계의 숲을 일구는 백화제방을 위한 이음의 현장을 성황리에 진행하고 있다. 송미숙은 춤 역사의 시간을 함께 해온 한국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받듬과 이음을 위해 60여년 동안 예인들에게 전통춤을 사사해왔다. 전통과 창작무용을 익혀 무용교육과 공연예술가로 활동해온 송미숙은 1994년 무용단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1,000여회 넘게 전통춤 관련 기획, 연출, 예술감독 역할을 해왔다. 송이사장은 "’한국전통의 맥 100인전‘을 통해 전통춤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아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예술현장과 학술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알아가는 담론의 장을 펼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전통예술협회는 2019년 창립 이후 전통예술과 인문학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문사회, 문화예술, 전통예술 분야까지 새로운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학술지 '한국예술문화연구'는 문화예술 공론장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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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에서 즐기는 가무악 ‘화이락락’, 전통에서 퓨젼까지경북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경상북도가 후원하며, 안동시, 아리예술단이 주관하는 2024야외상설공연 '화이락락和而樂樂'이 도산면에 위치한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5월 4일 첫선을 보인다. 안동지역의 관광활성화 및 시·도민의 문화향유를 위해 노력해온 아리예술단(예술감독 김나영)이 2개년 기획·제작을 맡았다. 2024년에는 약 15개의 단체, 120여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총 10회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참여단체들과 함께 전통무용, 연희, 국악, 소리, 퓨전, 융복합창작 등 다양한 가무악 장르의 야외특화 전통예술공연을 구성하여 지역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에게도 만족스러운 관람, 체험 경험을 전하고자 지속적인 노력 중이다. 이번 공연에는 국악밴드 나릿, 온누리국악예술인협동조합,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 한국전통춤협회, 세계풍류문화교류재단, 빈탕노리, 참넋, (사)한국국악협회 영주지부, (사)안동아리랑보존회, 아트프로젝트진 등의 전통공연예술단체가 함께 무대를 펼친다. 상반기 공연은 5월~7월간 총 5회 진행되며 5월 4일, 7월 6일은 무료입장, 5월 18일, 6월 1일, 6월 22일은 입장료 할인(안동시민 1,000원)으로 한국문화테마파크 내의 마술공연, 이벤트 체험도 즐길 수 있다. 5월 4일(토)에는 온가족과 함께하는 세대공감 국악콘서트 '국악밴드 나릿'과 온누리국악예술단 협동조합이 연희놀음. 흥보박타는 대목, 아리랑 등을 선사한다. 5월 18일(토)에는 복을 부르는 악가무 공연에서는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처용무, 대북시나위, 장구시나위, 맥놀이 등을 선사한다. 6월 1일에는 스토리텔러 류필기의 풍류콘서트에서는 안동의 역사적 배경, 인물, 예술을 흥미롭게 스토리화하여 전통예술, 춤, 음악을 접목한 스토리텔링 퍼포먼스 공연으로 전통예술의 흥과 멋 위에 퇴계이황선생의 스토리, 경북 안동의 역사와 철학이 즐겁게 펼쳐진다. 시놉시스는 안동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경북 안동 하회별신굿(국가무형유산 제69호) 이수자 류필기의 구수한 사투리의 입담으로 스토리텔링하고 대금 해금, 팝페라, 한국춤을 입힌 종합예술공연으로 안동을 처음 방문한 사람부터 안동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들까지 다 함께 안동의 가치와 로컬리즘 매력을 탐구하며 지역소멸, 인구감소에 맞서 세계 속 문화 도시 안동, 살고싶은 곳 '안동'으로 적극적인 유입과 귀환을 모색해본다. 우천 예보시 공연 연기, 또는 당일 우천시 실내극장인 설화극장에서 4시에 공연시간이 변경되어 진행 예정이다. 6월 22일(토)에는 김나영 예술감독의 해설로 '우리 춤으로 어우러지는 신명 1-여인의 향기'를 선보안다. 전국 각지에서 민족과 지역의 춤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는 전통춤협회의 대표 예인들이 준비한 전통춤 한마당으로 춤꾼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다채로운 춤 공연을 선사한다. 출연진은 한국전통춤협회 안동시 천안시 지부가 출연한다. 배주옥, 김정원, 정도경, 서지민, 조서우, 강다현, 구서혜, 옥승현, 박진희, 윤채영, 서현영, 고현서, 김시은, 최진영, 최윤형, 장현순, 김재정, 강민수, 신민진이 항발무.벅구춤.국수호 입춤, 영남교방무,지전춤,무당춤,쟁강춤,설장고춤을 선보인다. 7월 6일(토)에는 김나영 예술감독의 해설로 '춤극으로 만나는 안동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서사가 담긴 춤극이 펼쳐진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안동의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아리예술단의 전통예술브랜드 공연 '춤극' 작품들에서 대표적 넘버들을 선별하여 한국전통창작무용의 갈라콘서트 공연을 선보인다. 아리예술단의 조서우, 강다현, 고현서, 구서혜, 김시은, 목승현, 박진희, 서현영, 윤채영, 김동환, 이재준, 이현석, 이호준, 황정현 등이 안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 춤극 '종천지애', '연이' '하회'작품을 선사한다. 이 작품들은 10년 동안 매년 주목을 받고 전국 순회공연을 한 대서사시를 춤과 극으로 형상화한 춤극이다. 첫번째 춤극 '종천지애'에서는 제1막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제2막 월영교의 달밤, 제3막 죽음의 유혹 제4막 새날이 밝았네가 펼쳐진다. 두번째 .춤극 '연이'에서는 제1막 사냥의춤, 제2막 가릉빈가와 연이, 제3막 심판의 방이 오른다. 세번째 춤극 '하회'에서는 제1막 신비한 숲 신령한 나무, 제2막 어둠의 칼과 빛의 꽃, 제3막 신령한 힘 우리 안에가 선사된다. 단순히 보는 공연에서 더 나아가 전통을 모티브로 참여하고 신선한 공간으로 환기되어, 국악 공연에 어우러져 놀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공연이 진행되는 한국문화테마파크는 현재 4월~6월 주말 동안 특별체험프로그램 ‘도산난장’도 운영하고 있어 전통야외상설공연 ‘화이락락’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중이다. 김나영 예술감독은 "한국 정신문화의 도시, 안동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전통예술콘텐츠들을 통해 나고 자란 안동을 ‘전통의 정수를 지키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현대적 변화를 시도하는 K-컬쳐 대표 공연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하겠다."이어 "이번에 선정된 '화이락락' 주공연은 '함께하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안동의 전통예술에서부터 창작작품 5개 공연을 7개 단체가 참여하여 펼친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리예술단은 전통예술진흥 및 '창조적 계승'을 위해 지역성을 특화로 한 지역 브랜드를 발굴하여 스토리텔링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나아가 전통예술을 모티브한 고품격 작품을 무대화 하는 공연관광 콘텐츠를 계발해오고 있다. 공연에 관한 자세한 진행 사항은 아리예술단 인스타그램(@ahrheeartcompany), 한국문화테마파크 인스타그램(@kctp_andong) 및 아리예술단 기획팀(010-7161-4596)으로 문의하면 된다. 해당 공연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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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 이생강 명인 ‘구전심수 82년 젓대소리’ 공연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이사장 죽향 이생강)는 5월 4일(토) 오후 5시 서울시 강남구 민속극장 풍류에서 국가무형유산 죽향 대금산조 공개행사로 ‘구전심수 82년 젓대소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산조는 장고 장단에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기악독주곡으로, 신을 우러러 모신다는 의미의 시나위에서 기원한다. 시나위는 고대로부터 관혼상제 의식에 사용되던 평안을 기원하는 민속 기악곡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였던 부산에 집결한 23분의 스승으로부터 팔도의 가락을 모두 섭렵한 죽향 이생강 명인(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은 판소리와 봉장취(사랑과 죽음의 노래), 메나리조(동부 산유화 가락) 등의 다양한 가락을 고루 녹여내 장대한 가락의 산조를 정립했다.이번 공연에서 죽향 이생강 명인은 문하생, 이수현(설장고), 신지후(기획) 등과 함께 젓대소리의 유래를 담은 만파식적의 ‘오래된 이야기’와 우주 삼라만상을 품고 있는 가슴속 ‘심오한 이야기’, 온 세상에 자유로이 뻗어가는 ‘무성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탁월한 깊이감을 보여주는 성음, 현장의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즉흥성으로 이번 공연은 한국 민속악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진귀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행사 측은 그동안의 국민 성원에 보답하고자 가슴에서 가슴으로 구전심수한 이야기를 함께하는 공개행사를 마련했다며, 젓대뿐 아니라 설장고 및 민요와 아쟁 등 민속 가무악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니 열린 가슴으로 함께 궁극의 평온에 이르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이번 공연은 문화재청·한국문화재재단이 후원하고,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가 주최·주관한다. 전석 무료 초대 공연이다. 공연 예약은 네이버와 문자 예약을 통해 가능하며, 관람은 전석 무료다.(문의 010-2732-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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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세실풍류, 51명이 근현대춤 100년사 선보인다국립정동극장이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근·현대 춤꾼들의 100년 여정이 담긴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춤꾼 51명의 무대가 이번 달 매주 화·목요일 여덟 차례 공연이 이뤄진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 등 신무용 시기 춤부터 2000년대 이후 컨템퍼러리 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화해 온 우리 전통춤에서 신무용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근대 신무용이 등장한 1920년대부터 전후 무용학원 시대, 국립무용단 창단기, 1970년대 춤의 새로운 도화선이 됐던 한국창작춤, 현재의 컨템퍼러리 작품들까지 100년을 관통하는 우리 춤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 신무용기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개념으로 한국창작춤의 태동을 알리는 시기였다. 4일과 9일에는 1920년대 신무용을 조명한다. 지난 4일 1920년대 서양 문화의 도입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했던 신무용이 선보였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의 작품을 김선정·노해진·안나경·최신아·국수호·김형남·김호은이 무대에 올랐다. 신민요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무대화하며 신무용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배구자와 신무용의 성행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함으로써 신무용 시대를 연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 조택원의 작품을 오늘날 새롭게 재현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맛깔스런 해설로 흥겹게 진행되었다. 1920년대 신무용 선구자 '배구자의 '에여라 노아라' 민요춤을 김선정이 재현했다. 객석은 첫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1920년대 뮤직박스에 이끌려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막이 오르자 어두운 무대 배경에는 서서히 배구자의 춤자태를 보여주는 사진이 나오고,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용가는 잠시 그대로 배구자의 몸짓을 흉내 내고 정지 되어 서 있다가 춤을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백년전 불려졌던 민요는 오늘날 불려지면서 지금 시대에서 느껴지는 정서보다는 다르게 젖어들었다. 소박하고 정겨웠다. 일상복을 입는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이웃집 처녀가 집안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제 멋에 못이겨서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 첫 무대는 많은 박수를 받으면서 다음 무대가 더욱 기대되었다. 다음은 '배구자의 타령춤'을 노해진이 재현했다. 무대 배경에 나온 배구자가 입은 무용복과 똑같이 재단을 해서 만든 옷인데, 배구자는 색동무늬가 박힌 옷을 입었고, 무용가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그린 무늬가 박힌 무용복을 입었다. 노해진은 배구자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려는 집중력 있는 연기력과 호흡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렀다. 일단 타령조로 불린 무용곡이 신났다. 따라서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타령조라고 붙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구자는 1936년 직접 부른 도라지타령, 천안삼거리 곡이 담긴 음반을 낸 가무악에 능한 예술가다. 이 두곡을 엮고, 배구자의 영상, 사진, 기사자료를 참조하여 만든 신민요춤이라고 소개가 되었다. 무용을 보여주는 동안 무대에서 나오는 영상에는 미국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100세를 맞이하는 배구자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1928년 발표한 아리랑은 조선인이 만든 최초의 신무용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아리랑이 그 당시 최고의 유행가라는 것이 입증된다. 그만큼 배구자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을 줄 아는 한국 근현대무용의 선구자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유럽, 남미, 미국 등 15개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세계적 무용가 반열에 오른 최승희의 대표 작품 '초립동'과 '검무 격'은 안나경 무용가, 쟁강춤은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재현했다. 최승희는 현대무용 계열의 창작춤은 주목받지 못하다가 1934년 일본에서 조선풍 소재 창작춤을 발표하면서 대성공을 이루고 대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1937년 동경에서 초연된 '초립동' 춤을 1995년 김백봉이 새로이 안무한 작품을 안나경이 무대에 올렸다. 신명나는 밀양아리랑 선율에 맞추어서 빠른 템포로 추었는데, 허공에 들었다 났다하는 발동작을 앙징맞게 연출하며 누나같은 색시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천진난만한 어린 신랑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최승희의 상장적인 춤이라고 하는 쟁강춤은 북한무용을 대표하는 무용이다. 최승희의 쟁강춤은 무희춤이라고 불리는데, 최승희의 '무희' 춤을 바탕으로 여러 명의 무용수가 나오는 군무이기 때문이다. 쟁강춤은 손목에 '쟁강, 쟁강' 소리를 내는 쇠팔찌를 걸고 흥겨운 리듬을 울리면서 추는 춤이며, 본 작품은 지난날의 '쟁강춤'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하여 훌륭한 무대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특색있는 춤이다.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최승희 직계 제자답게 시원시원하게 보여 주었다. 1987년 파바다가극단에서 최승희 직계제자 김응범 선생에게서 쟁강춤을 배웠다. 남한 지역 전통 춤사위는 대개 느린 템포로 정중동을 표현한다. 여기에 북한 춤사위는 러시아 예술의 영향으로 남한보다 훨씬 빠른 템포를 유지한다. 한 시간이 넘는 무대를 남한춤만 채우기보다는 북한춤도 함께 보여주면 음악적 바란스가 안정적이라고 본다. 무대는 지루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외동포들에게 전통 춤사위만 보여준다면 러브콜이 없는 무대로 기억될 것이다. 2019년 러시아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서 최신아가 선보인 쟁강춤으로 러시아 동포사회와 시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오늘 무대에서도 연기력이 뛰어난 최신아는 쟁강춤을 완벽하게 선사했다. 그 댓가로 우뢰와 같은 관객의 박수를 선물로 받았다. 검무 격(格)은 검무는 신라 시대 때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던 검무를 모티브로 1934년 창작된 최승희의 대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검무가 원형을 잃어버리고 검의 움직임만을 주로 담은 섬약한 모습 무사(武士)의 검무, 즉 검술의 무도정신을 이어받은 움직임들로 창작했다. 작품 '검무_격格'은 김백봉이 최승희의 원작 '검무'를 1995년 격(格)이라는 부제로 안무 발표한 작품이다. 무예를 닦는 무인의 기백과 그 속에 깃든 기혼(氣魂)의 이상경(理想境)을 하나의 격의 경지로 표현했다. 안나경은 최승희의 춤사위를 체화하고 자신있게 보여주었다.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악기와 금색이 도는 금으로 만든 신발 등 화려한 금색 치장은 신라에서 숭상하는 검을 숭상하는 검도정신을 춤으로 형상화했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娑胡蝶)'을 국수호가 재현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그 시설 조택원의 춤사위를 잘 표현했다라고 평했다. 원로 무용수답게 완숙한 선과 호흡을 선사하여 기장 큰 박수를 받았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裟胡蝶)은 조택원이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가진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의 제목은 '승무(僧舞)의 인상(印象)'이었으나 이후 시인 정지용에 의해 '가사호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창작춤을 위해 처음으로 음악을 작곡한 작품이었고, 작곡은 김준영이 맡았다. 작품은 속세를 동경한 승려가 심산유곡을 버리고 새벽녘에 사바세계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가사를 벗어 던지고 환희와 광란의 춤을 추던 승려는 지쳐 쓰러져 생각한다. 불교에 의지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가사를 집어 들고 산에 가려 해보나 이미 파계승이 되어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도,뒤로도 갈 수 없는 승려는 가사를 집어 던지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가사호점은 승려의 파계와 귀의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희열을 한국의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조택원의 만종'을 김형남·김호은이 재현했다. 만종이라는 명화를 재해석하여, 신선한 스토리를 상상하게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춤사위가 아름다웠다. 남과 여의 호흡이 잘 어울어져서 펼쳐지는 큰 원 속에서 마치 두마리 나비가 사랑을 찾아서 희롱하는 모습은 객석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조택원의 만종은 19세기를 풍미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만종'과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에 영감을 얻어 창작된 2인무다. 조택원의 집 2층에 살고 있던 음악가 김생려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 엘만이 피아노곡을 바이올린곡으로 편곡한 쇼팽의 '야상곡'을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연주를 듣던 조택원은 마침 방에 걸려있던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만종은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조택원의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경건한 기도를 드리는 부부가 '야상곡'에 맞춰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비길 데 없는 평화와 고요, 비현세적인 경건함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조택원의 머리에서 춤을 추었고, 상상을 실현하여 작품 '만종'이 창작되었다. 한편 9일에는 신무용 2세대 김진걸·김백봉·최현·황무봉·최희선·송범의 작품을 정민근·안귀호·정혜진·김혜윤·윤미라·손병우·김장우·최영숙이 선보인다.11·16·18·23일에는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한국춤을 모색했던 1970년대 이후의 한국 창작춤을 만나볼 수 있다. 무용 전문 조직체와 교육기관이 설립되며 더욱 다채롭고 창조적인 춤이 등장했던 시기다. 당대를 대표하는 김매자·배정혜·국수호·문일지의 작품 등 창작춤 24편이 4회에 걸쳐 공연된다. 25·30일에는 한국 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컨템퍼러리 춤꾼들의 작품 12편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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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국악협회 안산지부 이윤선 지부장 취임"안산지역 전통예술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더하여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국악의 중심지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1월, 한국국악협회 안산지부 제10대 지부장으로 이윤선 안산지부장이 취임했다. 신임 이윤선 지부장은 경기 안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와 단국대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2011년 ‘안산어린이전통예술단을 창단하여 가무악일체(歌舞樂一體)의 지도를 했다. 본인이 안산전국청소년대회 수상자 출신으로 안산 국악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안산은 그야말로 "藝鄕・愛鄕의 도시”라고 말한다.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춘향가 보유자 이용길 선생의 수제자로서 이수자,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윤선 판소리 앙상블 ‘향’ 정규앨범 발표(2016), 제25회 전국전통공연예술대회 명인부 종합대상(2017), ‘이윤선 판소리 춘향가 완창’(2021)등 전통 판소리 뿐만 아니라 공연 및 앨범, 영화OST, 창극 및 작창에 성과를 거두었다. "안산은 조선 창극사에 기록된 19세기에 활동했던 판소리 창자가 있었고, 조선시대 유명한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예술활동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된 지역으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술 인재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제1대 지부장을 지낸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인 김천흥 지부장님의 노력으로 1989년 지부설립이 된 이후 현재까지 노력해 온 국악인들의 역사가 있는 국악협회 안산지부는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시감을 표했다. 앞으로 ‘안산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단원전국국악경연대회’, ‘안산시 전통예술제 달빛풍류’등 공연과 대회’를 확대시키고, ‘안산의 국악인 DB사업’, ‘안산 국악 학술세미나’, ‘안산의 무형문화재 발굴을 위한 자료 수집’ 등을 새로이 기획한다고 밝혔다. 함께 인준을 받아 2028년까지 일하게 되는 임원은 이민지 부지부장(기악), 김미애 이사(기악), 김경훈 이사(타악), 이나경이사(무용), 전효정이사(서도소리), 전민길이사(풍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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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 가무악 향연국립남도국악원은 오는 23일 토요일 오후 3시, 대극장 진악당(전남 진도)에서 2024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 가·무·악 종합공연 '국악의 향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다양한 봄꽃이 만개하는 봄날과 어울리는 곡들을 담아 구성하였다. ‘흩은 가락’이라는 의미의 기악독주곡 형식의 산조를 서용석 명인의 가락으로 엮어 연주하는 <산조합주>를 시작으로, 유비가 관우·장비와 함께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그의 집을 세 번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판소리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 남도잡가 중 유명한 온갖 새가 나오는 <새타령>, 피리독주곡 <상령산풀이>까지 선보인다. 이어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양손에 부채를 들고 여러 가지 꽃과 물결 모양을 만들며 추는 <부채춤>, 보는 이로 하여금 모두를 신명 나게 하는 <김오채류 선반 설장구>, 마지막으로 박범훈의 가야금 독주곡 <새산조> 연주 위에 펼치는 국립남도국악원 무용단 이임정 단원의 무용까지 감상할 수 있다. 공연은 무료이며, 공연 전후 진도읍사무소와 국악원, 오산초등학교(고군면) 거쳐 회동(신비의 바닷길)과 국악원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또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11월까지 공연 스탬프 쿠폰 이벤트를 진행하여 참여한 관람객들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공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남도국악원 누리집(https://jindo.gugak.go.kr), 또는 전화(061-540-4042, 장악과)로 안내받을 수 있다. 한편, 2004년 개원한 국립남도국악원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해,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공연과 교육, 체험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 국민의 문화쉼터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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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84)<br> 춤꾼 정명자의 '초립동'춤사위초립동 1937년 최승희가 조선민족의 정서를 담아 창작한 무용 작품이다. 초립은 예전에 주로 어린 나이에 관례(관습)를 한 사람이 쓰던 것이다. 나이 어린 총각이 새각시를 맞을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부끄러움과 웃음의 동심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진행과정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어린 신랑의 다양한 표정 연출이 작품 전반에 시종일관 펼쳐진 높은 연기력이 보이며, 또한 뛰어난 유연성과 순발력을 통해 보다 어린아이다운 생동감이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신나는 기분은 돈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제기차기로 흥겨워도 하며 때로는 어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등 짓궂은 모습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어린 신랑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다양한 표정과 역동적인 동작에 의해 생기발랄하게 보여준다. 최승희의 초립동 발표 이후 해외공연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파리에서는 초립동 모자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무용가들에 의해 동명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으며, 1998년에는 재일교포무용가 백향주가 서울에서 최승희의 초립동을 재현하여 화제가 되었다. 정명자 경남무형문화재 21호 교방굿거리 이수자 경북문화재 9호 대구살풀이춤 이수자 예빛아트 대표 및 총 예술감독 예빛예술단 예술감독 전통예술진흥회 이사 고법보존회 이사 前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 前 한국국악협회 여성국극 분과위원장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동경공예대학교 졸업 1995년 서울특별시명예시민상(조국을 빛낸 해외동포상) 2001년 제3회 장흥전통가무악전국대제전 대통령상 2002년 한국방문의 해 홍보대사(문화관광부) 2005년 뉴스선데이 문화예술부분 대상수상 2006년 민족문화예술 대상수상 주요작품 뮤지컬 / 제비, 섬꾸러기, 이육사, 홍의장군 곽재우, 태화강의 북소리 가무악극 / 귀천지, 어머니오마니, 한송이 꽃되어, 춤길, 궁, 월하청풍, 할미의 노래 부족, 횃불, 소리가 춤을 부른다, 봉장취, 창, 동트는 울림들, 천지인 창극 / 황진이, 고경명, 해님 달님 , 서동왕자, 혜경궁 홍씨 2018년 G-20 축하 기념공연 연출 2019년 ‘4.13 영조의 환생’ 연출·감독 개인발표회 40회 1.300여회 공연 및 행사 출연/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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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암리농악보존회,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 성료뒤늦게 내린 하얀눈 위에 사암리 사람들이 한마음을 모아 대보름날을 앞두고 대룡산 일원에서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잔치를 열었다.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춘천 사암리농악보존회(단장 오선주)가 주관하는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 2024’가 25일 사암리약물샘, 사암2리마을회관, 동내초등학교 3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춘천 7개 공연예술단체가 초청되어 가무악과 함께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마임, 마법 등이 펼쳐졌다. 이번 행사를 함께하는 단체는 곰지내농악(단장 김창수).땅울림(대표 최미선),동내면 Nn걸스(대표 최은영), 춘주농악(단장 이미숙),동내면 어린이농악단(단장 김효선),홍천 서면농악(단장 엄순자),춘천의병아리랑 보존회(이사장 기연옥)이다. 총 8단체가 사물놀이.농악.민요를 펼친다. 여기에 이형재 아티스트가 큰붓으로 대룡을 그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오전에는 사암리 산 중턱에서 일년내내 솟아오르는 약물샘 주위에 있는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 마을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는 고유제를 올리고 이어 약물샘에서 샘굿을 펼쳤다. 동내면 면장 박상한, 이장단협의회장 문덕기, 사암2리 이장 지찬주가 나서서 대룡산 상천제를 지내고. 이학주가 축문을 낭독했다. 반세기 동안 춘천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암리 주민인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이 대룡산샘물을 상징하는 공지어 모자를 쓰고 제사장으로 분하여 '공지어샘굿' 퍼포먼스를 통해 상천제 제문을 하늘에 올렸다. 사암리농악보존회는 공지어샘굿을 통해 퇴계와 공지어전설이 깃든 샘을 발굴하여 매년 마을사람들과 샘굿을 모티브로 여러 다양한 장르 및 문화컨첸츠를 계발해 오고 있다. 올해는 콜라보 형식을 더해 퇴계전설과 공지어전설을 주제로 한 마법 등 스토리텔링을 더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사암리 샘굿에 전해져 내려오는 공지어전설을 알리기 위해 공지어그리기, 공지어놀이마당, 공지어이야기, 공지어마술, 공지어빵(붕어빵), 강아지서당 등 여러 장르에서 보여준 다양한 컨텐츠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공지어전설에 대해서 오선주 단장은 "퇴계 이황이 춘천시 퇴계동에서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하루는 강아지가 들어오더니 가르침을 경청하였다. 퇴계는 기특하여 끼니때마다 자기밥의 반을 덜어서 강아지에게 주었다. 반찬도 덜어서, 그렇게 3년이 지나자 강아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며칠후 웬 젊은 초립동이 찾아와서 큰 절을 하고 나서 공손하게 "저는 용왕의 아들입니다. 선생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하여 퇴계는 용궁에 초대되어 대접을 받고 나오는데 용왕이 짚 한오라기를 주며 머리부분부터 조금씩 잘라서 반찬으로 들라고 한다. 이후에 잘라보니 용궁에서 먹던 진미 중의 고기였다. 오래 두고 먹다보니 지푸라기 끝만 남게 되어 개울물에 넣었더니 수많은 고기로 변하였다. 이후에 공지어로 부리면서 개울 이름이 공지천이라고 불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퇴계 선생에게 공부를 하는 용왕의 아들을 상징하는 강아지를 기억하기 위해 '강아지서당'도 꾸며졌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학부형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특히 예로부터 사암리 약물샘은 피부병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여, 먼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물할미샘’으로 유명하다. 사암리농악보존회는 동내면의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컨텐츠를 찾아내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의 대미를 보여준 작품은 ‘대룡산 샘물 합수굿’을 통해 마을공동체 공존을 넘어 '상생'의 의미를 더했다. 춘천의 젖줄기 공지천의 발원인 사암리 약물샘과 고은리약수 등 대룡산의 샘물을 모두 모아 ‘대룡산 샘물 합수굿’을 선보였다. 동내면 5개리(사암리, 거두리, 고은리, 신촌리, 학곡리)가 만나는 합수굿이 행사의 의미를 더욱 고조시켰다. 함께한 5개 지역 주민들이 큰 의미있는 행사라고 하면서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손을 맞잡았다. 춘천에서 유일한 어린이농악대가 나와서 높은 기량을 펼쳤다. 동내면 어린이농악단(단장 김효선)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명이 깃든 기예를 보여주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오선주 단장은 "사암리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중국 조선족 농악무’의 근간이다. 1927년 조선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사암리 10여호 농만들이 중국 계관향 영벽라자에 이주하여 농악대를 조직하였다. 이 첫 농악대의 근본이 오늘날 중국 '조선족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다. 2016년 사암리농악 보존회 창단공연때 왕청현농악단 김명춘 '조선족농악무' 예능보유자를 초청을 했다. 올해에는 사암리농악단이 초청을 받아서 주민들과 함께 가보려고 한다. 사암리 마을 사람들은 춘천의 자부심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년에 이어 ‘ON-다’사업에 선정 된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는 동내면의 주민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동내면 박상헌 면장은 "공지어전설이 깃든 사암리약물샘은 마을공동체 구축과 춘천을 알리는 중요한 장소이다. 앞으로 이러한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사암리농악보본회가 주최하는 대보름날 행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겠다"라고 전했다.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가 '대룡산 대보름놀이'에서 컨텐츠 계발로 매년 만들어지고 있는 공지어전설을 주제로 한 '대동놀이' 행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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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대룡산 대보름놀이 25일 개막올해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지역 예술인들이 대룡산 일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잔치를 연다.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춘천 사암리농악보존회(단장 오선주)가 주관하는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 2024’가 25일 사암리약물샘, 사암2리마을회관, 동내초등학교에서 열린다. 춘천 7개 공연예술단체가 초청되어 전통연희의 진수를 품은 가무악과 함께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마임, 마법 등이 펼쳐지며 강강수월래로 마무리한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강강술래는 마을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전통연희이다. 여기에 여러 다양한 장르가 엮어져 콜라보로 보여주는 무대가 기대된다. 오전에는 오래된 민족신앙 중 하나인 고유제를 올린다. 마을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이어 사암리 산 중턱에 있는 약물샘에서 샘굿을 펼친다. 오전 10시 사암리약물샘에서 소원쓰기, 길놀이 등이 열리고 오전 11시 30분 사암2리 마을회관으로 놀이가 이동해 지신밟기에 이어 전통놀이, 오곡밥 나누기를 통해 대동정신을 나눈다. 오후 2시부터는 동내초교에서 대룡산 고천제와 샘물 합수굿을 볼 수 있다. 사암리농악, 곰짓내동네북춤, 춘주농악 난타 공연과 ‘공지어 설화’를 소재로 한 놀이마당 등이 펼쳐진다. 유진규 마임이스트도 이날 행사에 함께 한다. 공지천의 전설 ‘공지어 이야기’를 문화컨텐츠로 공지어 놀이마당을 펼친다. 공지어 전설에 나오는 강아지서당, 용궁만들기, 볒짚이 공지어로 바뀌는 마술 등 지역의 전설을 문화컨텐츠로 놀이화 한다. 춘천을 대표하는 문화단체가 사물놀이 (곰지내농악), 곰짓내 수북놀음 (땅울림). 민요 (동내면 Dn걸스), 난타(춘주농악), 농악 (동내면 어린이농악대), 농악 (홍천 서면농악), 강강술래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을 선보인다.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는 유일한 어린이농악대의 등장은 언제나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오선주 단장은 이 행사를 통해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의미를 공유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복사골 사암리에는 주민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며 두 손을 모았다. 수돗물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마을 우물이나 샘물이 솟아나오는 장소를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날을 정해 놓고 정성스럽게 섬겨왔다. 그러나 이제는 한수이북 지역에서 샘굿을 하는 지역이 희박해지고 있다. 특히 실제적 현장이 있는 곳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이 되면서 아파트나 골프장 등으로 덮어지거나 수해 등, 인위적/자연적 요인에 의해 매몰되었다. 특히 그 자리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고, 낙엽에 쌓이고 산사태 등으로 묻혀버렸기 때문에 흔적조자 어림할 수 없다. 발굴이 된다고 해도 복원이 힘는 실정이다. 다행히 사암리 샘굿은 마을 사람들과 오선주 단장이 앞장을 서서 발굴이 된 것이다. 당시 낙엽과 흙더미에 쌓여서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삼국시대부터 신성한 장소로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과 무업을 하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곳이라고 전한다. 자금은 마을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주위를 가꾸고 있다. 샘이 솟아오르는 옆에는 폭포가 흐르고 주위에는 상당히 넓게 제단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름에 가면 선선하고 차거운 냉수를 먹을 수 있다. 사암리농악보존회는 샘굿을 통해 퇴계와 공지어전설이 깃든 샘을 발굴하여 매년 마을사람들과 샘굿을 모티브로 여러 다양한 장르 및 문화컨첸츠를 계발해 오고 있다. 해를 갈수록 스토리텔링을 더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동내면의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컨텐츠를 찾아내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암리농악보존회는 춘천의 젖줄기 공지천의 발원인 사암리 약물샘과 고은리약수 등 대룡산의 샘물을 모두 모아 ‘대룡산 샘물 합수굿’을 선보인다. 특히 사암리 약물샘은 피부병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여 먼곳에서도 찾아온 ‘물할미샘’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치유사례를 공모하여 발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선주 단장은 "사암리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중국 조선족 농악무’의 근간이다. 마을 사람들은 춘천의 자부심으로 여기며 자랑스러러워 하고 있다."며" 작년에 이어 ‘ON-다’사업에 선정 된 '대룡산 자연치유 대보름놀이'는 동내면의 주민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와 사암리 대룡산 샘에서 시작되는 '대룡산 대보름놀이'의 근간이 되는 공지어전설을 주제로 한 '대동놀이' 행사에 무게를 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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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광대' 문진수가 아시아 1인극제 합류하다'아시아1인극협회'가 주최하고 '아시아1인극제·거창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아시아1인극제는 1988년 고(故) 심우성 선생의 선언으로 서울에서 시작됐으며, 2007년부터 거창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전통연희를 전공하는 문진수 아티스트가 전통(춤사위. 재담, 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서 국내외 참가자들과 국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1인극제는 전통을 현대적 퍼포먼스로 작업하는 아시아 지역 솔로 퍼포머들의 축제로 3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4개국 25명의 공연자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난리버꾸통’을 펼쳤다. 주최측은 "아시아의 전통예술은 어느 나라나 생존 위기에 놓여있다. 1인 공연분야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지만 세상을 비추는 불빛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모집분야는 전통예술 장르를 모티브로 한 1인 퍼포먼스 작품으로 전통연희, 춤, 음악, 연극, 마임, 오브제 인형극, 서커스, 마술, 저글링, 복합장르 등 다양한 분야이다. 실내와 야외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면 신청 가능하다. 출품 작품 공연시간은 20분 이내이다. 국악신문 기미양 객원기자가 '아시아1인극제'를 앞두고 지난해 많은 전승활동을 보여준 1인극 뫼비우스를 발표한 문진수 아티스트를 인터뷰 했다. 국내 전통예술 평론가 남정숙, 조춘영, 정형호 민속학자에 이어서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에까지 러브콜을 받고 있는 문진수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Q. 안녕하세요. 문진수 선생님 작품은 무대에서 매년 보고 있습니다. 아시아 1인극제 참여(합류)하게 된 계기는 A.제가 아시아 1인극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현재 아시아 1인극제 예술감독을 맡고 계신 마임의 대가 유진규 선생님의 추천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민속학자 故 심우성 선생님의 아드님 심하용 한국민속극박물관 관장님께서 공주 아시아 1인극제를 대신할 '공주돌모루예인축제'를 만드셨고, 그곳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명성과 작품은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직접 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Q.유진규 선생은 언제 처음 만나셨는지요. A.그런데 공교롭게도 선생님을 뵌 건은 2004년 공주 아시아 1인극제 였습니다. 거창 아시아 1인극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공주 아시아 1인극제'에 같은 장소에서 제가 공연을 했었는데, 아마도 유진규 선생님께서는 저의 존재나 함께 출연한 것도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후 20여년 만에 '공주돌모루예인축제'에서 재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유진규 선생의 추천으로 1인극제위원회에 합류하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아시아 1인극제 운영위원(연희)으로 추천해 주셨고 미력하나마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Q.작년 아시아 1인극제 내놓은 작품은 A.'뫼비우스'라는 작품입니다. 부 제목은 '흑사 위에 백사'이고 천의무봉 중에서 12발을 내세워서원을 형상화 했습니다. 거기에 재담에 얹어서 시대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공연입니다. Q.전통 연희가 아닌 새로운 모더니즘이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목소리를 1인극에 담아내는 작픔을 마치고 어떤 영감을 받으셨는지요 A.공연을 마치고 뒤풀이에서 유진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저에게는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얘는 광대인데 그냥 광대가 아니야! 아름다운 광대야” 선생님의 말씀처럼 아름다운 광대가 되기 위하여 늘 정진하고 노력하며 정신과 육체를 가치 있게 다듬고자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광대로 살고 싶습니다. Q.뫼비우스. 흑사 위에 백사' 시놉시스는, 배경음악, 연출, 안무는? A.우리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극화 되면서,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억압과 횡포에 저항하면서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왔습니다. 검은 세력과 요괴들의 검은 마법에 어지럽혀진 인간 세상에서 구원과 평화를 기원하는 작품입니다. 배경음악은 남사당 대전지회에서 협연해주셨고, 연출, 안무는 제가 맡았습니다. Q. 오늘날 흑사를 상징하는 부류는? A. 인간세상을 쥐락 펴락하는 사회 특권층 목사, 박사(지식꾼), 변호사, 판사, 검사, 정치가 등을 통털어 지칭합니다 Q.'뫼비우스' 작품 주제는 A.지배자 권력의 억압과 횡포에 맞선 피지배자의 '저항정신'을 시대비판 의식으로 담아냈습니다. Q. 주제를 상징하는 구체적 행위는 A. 흑사에 대항하는 백사가 돌리는 상모의 큰 원은 공생과 화합을 상징합니다. 주제의식을 원으로 상징했습니다. Q.줄거리는 A. 인간과 요괴가 공존하는 어지럽고 혼탁한 요지경 세상. 악의 흑주술을 따르는 검은 세력은 요괴들과 야합하여 세상을 온통 흑마법으로 물들이고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고 뒤흔들며 설상가상 검여사까지 등장하여 검은 세력들은 한층 더 득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검은 세력과 요괴를 물리치려 시도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세상을 오히려 악으로 물들인다.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무고한 자기편 사람들을 잡아들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소위 말하는 내전이 일어난거죠. 이후 검은 세력의 막강한 힘과 권력 앞에 무너지고 마는 인간 세상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제의를 지내게 된다. 소망에 답하듯 혼탁한 검은 무리 흑사에 대결하는 백사(12발 상모)가 출현하고 협객 금복주의 활약과 희생으로 세상은 평화를 되찾게 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과 12달 축원 덕담, 숭고한 희생에 대한 '비나리'의 의미를 담은 춤과 마지막 신명을 다해 '12발 상모' 연희를 보여주면서 대단원을 올리고 막을 내렸습니다. Q.전통연희 중 어떤 제재를 선택해서 표현하셨나요 A. 검은 세력 흑사를 상징하는 검은 색 의상, 백사를 상징하는 12발 상모입니다. 거기에 극적 스토리텔링 바탕위에 펼져지는 재담, 12발 상모연희, 춤사위로 풀어낸 1인 연희극 작품입니다. Q.기획 의도는 A.‘문진수류 열두발 상모춤 1인 연희극, 뫼비우스(검사 위에 백사)’는 열두발 연희에 새로운 창작과 시대적 이야기를 더해 선보이는 1인 연희극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 풍물판에서 12발 상모가 보여주는 부속 연희로서의 한정된 기예와 제약에서 벗어나 미학적인 가치와 몸짓의 예술성과 함께 검은 세력(검은색 의상)과 그에 저항하는 백사(12발 상모)의 대립, 극적 갈등의 해결, 염원과 제(祭)를 통해 시대의 정신을 담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통민속 예술(연희)의 전통성과 시대의 목소리를 '재담'이라는 전통연희 장르를 조합하여 현대적 해석을 모색했습니다. Q.작품 목적은 A. 첫째, 시대에 맞서는 민중정신, 인간 삶의 애환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며 평안을 기원하는 민중공동체의 가치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둘째, 전통의 '현대적 해석', 즉 전통연희극 창조작업을 통해 전통의 확장을 모색했습니다. '춤사위/재담/소리'의 조합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셋째, 벽사진경(辟邪進慶)을 추구하는 제의적 행위 '굿'을 통해 전통예술이 구현하는 공동체의 조화와 공생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였습니다. Q.작품의 완성을 위해 어떤 점에 노력했나 A.전통 12발 상모 연희를 재창조하며, 전통 연희와 풍물굿의 고사 소리 등에서 구전되어 온 재담들을 해석한 바탕 위에 사회적 가치, 시대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재담에 담아 연희극을 재창작하였고, 12발 상모 연희와 함께 유려한 춤을 추면서 재담을 해야하기에 숨이 차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머리에 상모를 쓰고 재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춤과 연희를 보여주며, 또한 고난도 연희의 끝에연달아 재담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짧게는 35분. 길게는 2시간도 할 수 있는 저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평소 체력 증진에도 힘썼습니다. Q.극적 요소는 A. 인간 세상을 혼란시키는 검은 세력과 백사의 대결구조, 12발 상모를 검은 세력에 대항하는 주체로, 재담 행위는 저항하는 민중의 주체로 대비시켰다. 즉, 12발 상모 연희와 춤사위, 재담 행위는 각각의 주체로서, 극적인 대립과 갈등 구조를 표출하는 연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Q. '1인극'으로 보여준 전통연희 작품을 관객들은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연희자의 시선에서, 다시 말하면 무대에서 바라보는 관객들과의 교감은 주고 받았나요. 특히 외국에서 온 아티스트로 출연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A.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를 하고 보신 것 같습니다. 백사의 출현(전개)과 갈등(클라이막스) 해결(대단원)이라는 드라마틱한 극적 과정이 넘어갈 때마다 관객은 알아채고 추임새와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작품 속에서 재담과 춤, 연희를 통해 서사의 매듭을 매고 달고 풀어내며, 외국아티스트들과 춤과 연희라는 '몸의 언어'만으로도 충분한 감흥과 신명을 주고 받았습니다. 지난 해 줄판,살판 등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광대 문진수 아티스트는 전통과 현대의 충돌, 억압에 맞선 '저항'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뫼비우스'작품을 발표했다. 전통연희를 현대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장르로 탄생시켰다. 세계를 향해 12발 상모를 내걸고 현대적 아티스트로 새로이 태어났다. 전통과 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광대로.... 전문가 평에 의하면 품격있는 가무악에 능한 문진수의 멋들어진 유려한 춤사위, 재치 넘치는 재담, 화려한 12발 상모 기예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전한다. 어느새 관객들은 연희꾼 문진수의 스토리텔링을 따라 검은 세력의 횡포에 함께 분노하며, 인간 세상의 갈등과 대결을 마치고 조화(구원)를 기원하게 되는 과정에 공감했다고 전한다. 올해 아시아1인극제 1차 모집에 한국 작가 80여 명이 경연에 참가했다고 한다. 유진규 심사위원장에 의하면 "예술계 각 분야 전문 심사위원 8분이 개개인 기예능과 이력, 작품목적과 주제 등을 채점하여 그 중 12개 작품을 선정해서 세계인들과 같이 6월 20일부터 5일간 거창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고 전한다. 전통작품을 근간으로 한 어느 장르 작품이 나올지가 궁금해진다. 운영위원 문진수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발표는 다음주 2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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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18>유지숙 노래 최경만 피리 <관산융마.수심가> 유지숙 명창은 2015년 프랑스의 Ocora 레이블로 Yu Ji-suk Traditional Songs <North Korea> 음반을 출반하고 이번에 서도소리의 백미인 관상융마와 수심가를, 유지숙 노래 최경만 피리 <관상융마.수심가>라는 음반명으로 2장의 음반을 출반하였다. CD 1, ‘관산융마’에는 7곡이 수록되어 있다. 전통민요 중에서 유일하게 칠언절구의 한시를 가사로 부르는 노래인데, 민요보다는 전통가곡의 음계와 선율 분위기와 창법을 담고 있어 서도소리 명창들도 어렵게 느끼는 노래이다. CD 2, ‘수심가’에는 8곡이 수록되어 있다. 서도소리는 ‘수심가조(토라)’라고 부르듯이 수심가는 서도소리 음계의 기본이 되는 노래이다. 노래는 긴수심가-엮음수심가-긴수심가로 구성되어 있다. 반주는 모두 최경만 피리 명인의 독반주로 서도소리의 아름다움을 잘 받쳐주고 있다. 유지숙 명창은 경기 강화 출신으로 오복녀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0호 서도소리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해설서는 김해숙 교수의 글로 아주 자세하며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서도소리 음반이다. 피리만의 간결한 반주로 서도소리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일청을 권해 본다. 정영만 <넋 노래> 정영만 무인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0대를 이어 온 무가에서 태어난 11대의 장남이다. 어릴 때부터 가무악 속에서 자랐고 8살 때 굿판에서 ‘피리부는 새끼무당’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났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굿판을 떠나 선반공, 기관장, 택시기사로 전전하다 1987년 가문의 굿이 국가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으로 지정되자 굿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야 그의 음악을 2장의 음반으로 만나게 되었다. CD 1에는 ‘신청’(굿과 음악을 가르쳤던 장소)이라는 이름으로 ‘불림’, ‘길군악’, ‘선왕풀이’, ‘수부시나위’, ‘영남대풍류’, 5곡이 수록되어 있고, CD 2에는 ‘산수계’(통영 신청을 중심으로 모인 세습무계 모임)라는 이름으로 ‘굿산조’, ‘가래소리’, ‘구음시나위’, ‘망향’, ‘상여소리’, 5곡이 수록되어 있다. ‘굿산조’는 처음으로 듣는 이색적인 산조이다. ‘구음시나위’는 박병천 명인의 구음시나위가 생각난다. 정영만 무인은 국가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이다. 음반으로는 첫 음반으로 해설서에는 음반과 곡설명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많은 제자들과 함께한 음반이다. 무속음악에 관심있는 분에게는 필청의 음반이다. <진민진 아쟁산조>-박대성류- 진민진 아쟁연주자의 3번째 음반이다. 음반에는 박대성류 아쟁산조 ‘긴산조’와 ‘짧은산조’가 실려 있다. 연주자는 박대성 명인의 제자로 부산대학교에서 한국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부산국악원 연주단 부수석단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8년 진민진아쟁창작곡집 <바다 숲을 걷다>, 2021년에는 2집 <아쟁, 정가와 마주 닿다>를 출반한 후 처음 산조음반을 출반 한 것이다. 음반에 수록한 박대성류 아쟁산조의 박대성 명인은 한일섭 명인의 제자로 명확한 계보로 전승되고 있으며, 스승의 가락을 토대로 명인의 예술성과 음악성을 담아 산조 가락을 완성하였다. 주로 즉흥으로 가락을 짜서 연주하다가 가락이 정형화되는 시류에 맞추어 본인의 가락을 정리하여 유파를 형성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가락구성과 운궁법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어법을 가진 산조를 형성하였다. 음반에는 ‘진양-중모리-중중모라-자진모리’, 4악장의 ‘긴산조’와 ‘짧은산조’가 수록되어 있다. 장구는 부산대학교 박환영 명예교수가 맡았다. 연주자는 섬세하고 차분한 연주로 박대성류 아쟁산조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해설서는 보통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2005년에 박대성 명인을 위해 정창관국악녹음집(8) <박대성의 국악세계> 음반을 제작한바가 있다. 그 때의 산조 녹음장면을 회상하면서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이다은 <잔별의 이야기> 이다은 소리꾼의 첫 번째 EP음반이다. EP(Extended Play)음반이란 원래 7인치 45회전 음반을 지칭하고 있는데, 지금은 수록곡(시간)이 적은 LP음반이나 CD음반을 EP음반으로 부ᅟᅳᆯ고 있다. 음반에는 3곡의 노래곡과 같은 기악곡이 수록(모두 6곡)되어 있다. 타이틀곡 '그래스긍가'는 수궁가 중 좌우나졸 대목을 모티브로 토끼가 별주부에게 속아 바닷속으로 간 이야기를 현대의 정서에 맞게 풀어낸 곡이다. 레트로와 국악을 결합하여 새로운 장르와의 융합을 도전한 곡으로,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대의 각박한 삶에 믿음이 사라진 것을 비판한다. ‘뱃노래’는 쉽게 꺾이지 않은 인간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영원의 숨결‘은 신의 관점에서 본 세상과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몽환적인 대중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통곡조에 현대적인 변용을 토대로 인간의 삶을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다. 피아노, 베이스, 전자기타, 드럼이 반주로 참여하고 있다. 한 페이지의 해설서에는, 이 음반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낸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앨범으로, 각자의 삶에서 꿈을 이루고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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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광대, 문진수의 연희창작 ‘뫼비우스’정형호(전 한국민속학회 회장) 공감과 소통이 멀어지는 이 시대에 전통 연희를 바탕으로 어떻게 새롭게 창작해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아시아1인극제-거창2023에서 문진수가 보여준 ‘뫼비우스’는 하나의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당시 거창문화회관에서 처음 선을 보인 ‘뫼비우스’라는 창작 연희극 '일명 흑사 위에 백사' 를 선보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통 사회에서 광대인 우인(優人)들은 ‘우희(優戱), 일명 ’소학지희(笑謔之戱)’를 통해 양반관료층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소극을 보여주었다. 1505년 연산군 시절에 우인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놀이(老儒戲)에서 논어를 인용하면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君君臣臣父父子子 君不君臣不臣 雖有粟 吾得而食諸)라고 풍자한다. 왕은 그 말이 불경스럽다고 하여 공길이를 곤장쳐서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한다는 말이 거슬렸을 것이다. 이미 고려 말기 공민왕 시기에 광대들은 권신 염흥방과 시종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자 광대놀이로 이를 비판한 일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때에 어느 광대는 어전에서 정평부사 구세장의 안장 구입 관련 비리를 폭로했으며, 광대 귀석(貴石)은 궁중에서 고관들의 매관매직을 풍자한 일도 있었다. 또한 광대들이며 대장장이인 고룡(高龍)은 술취한 장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 따라서 광대의 ‘우희’는 부패한 양반관리를 비판하거나, 현실의 비정상적 인물을 우스광스럽게 흉내 내는 것 등을 두루 포함한다.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는 광대들의 비판 정신은 20세기 후반의 군사독재 시대에 마당극이나 창작 판소리를 통한 문화운동에서 다양하게 선보였다. 문진수의 ‘뫼비우스’를 보면서, 김지하의 창작판소리 ‘똥바다’와 ‘오적’, 또한 1세대 마당극 출신들의 치열한 시대 비판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21세기에 새롭게 깨어난 통렬한 말뚝이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문진수는 21세기에 이런 시대비판적 광대의 모습을 이어받고 있다. 그는 남사당놀이 이수자 출신으로 춤, 농악, 소리, 재담 등을 두루 익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가무악의 가량을 단순히 익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광대의 시대정신을 고민하고 이를 예술혼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뫼비우스’의 작품 내용은 단순하다. 부제인 ‘흑사 위에 백사’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권력을 휘두르는 흑사의 횡포에 맞선 백사가 등장해서 응징한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그는 다양한 연행요소와 뛰어난 춤과 재담으로 판을 이끌어 가고 있다. 30여분간 진행된 작품에서 관객들은 때로는 그의 멋진 춤에 감탄을 하고, 재담의 시대비판에 추임새로 적극 호응하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근래에 이렇게 관객과 소통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작품이 있었을까? 그가 말하는 흑사는 권력만을 쫓는 인물로서, 남에게 엄격하고 스스로 관대하며, 힘없는 자에게 온갖 횡포를 부리는 특권층이다. 그는 검은색 법복에 검은색 상모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처음에 흑사가 되어 긴 상모의 한쪽만을 쥐고 흔드는데 마치 검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무대 가운데에 앉아서 상모를 천천히 돌리면서 관객을 향해 거만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는 나중에 백사로 변신해서 이번에는 정의의 사도로서 흑사를 응징한 다음에 다시 긴 상모를 돌린다. 이때 돌리는 상모의 큰 원은 포용과 화합을 상징한다. 그는 다양한 연희요소를 바탕으로 판에 변화를 주고 시대풍자의 다양한 장치로 이용한다. 상모 줄은 짧거나 길게 사용하면서, 어떤 때는 사람을 해치는 검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사람들을 감싸기도 한다. 심지어 줄넘기 줄로 사용하는 재치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뱀을 파는 약장사로 변신하기도 한다. 뱀이 지닌 정력을 통해 온갖 ‘사’자가 들어가는 목사, 박사,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의 비행과 무기력을 폭로하면서, 사회 특권층을 비판한다. 그는 다양한 고품격의 춤을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넋을 빼앗는다. 탈춤 춤사위를 응용한 덧뵈기춤, 신칼대신무를 바탕으로 한 넋풀이춤, 상모를 이용한 다양한 상모춤 등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의 춤을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냥 그의 다양한 춤만을 보아도 손색없는 한 마당의 공연이 된다. 중간에 '아시아1인극제-거창2023 '주제가인 ‘난리버꾸통’에 맞추어 춤을 추고, 익살스런 현대춤이나 어린이의 춤동작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무거운 주제를 다양한 연행요소를 섞어 가볍게 풀어가는 재주를 지녔다. 시대풍자의 무거움을 뱀장사로 변신해서 즐거움을 주고, 현대의 "따르릉 전화왔어요”라는 메시지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리기도 한다. 이렇게 관객의 한 사람으로 웃거나 분노하다가, 뒤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임진택이 김지하의 '똥바다'나 '오적'을 창과 사설 중심의 창작판소리로 풀어갔다면, 문진수는 ‘뫼비우스’에서 춤, 재담, 소리, 몸짓의 전통적 연행요소를 혼합해 새롭게 풀어간다. 그는 1인극의 새로운 도전과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혼자서 사물 반주에 맞추어 풀어가는데, 복색은 기본적으로 법복에, 흑사는 벙거지가 검은색, 백사는 흰색으로 구분하고, 상모를 소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근래에 전통 연희의 현대화에 여러 방식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기존에 ‘더광대’, ‘천하제일탈공작소’ 등은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시대 비판의식을 담아내거나, 아니면 무의미한 일상의 인물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근래에는 외국 고전작품을 한국화하는 작업도 하며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진수는 시종일관 전통 연행요소를 바탕으로 통렬한 시대비판 의식을 담아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전통연희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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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78)<br> 춤꾼 정명자의 '가무보살춤'가무보살춤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던 최승희가 안무한 부처의 자애를 받이들인 보살의 자애로움을 춤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며, 동양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추어졌는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관음보살의 자비행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지만 보현보살의 행원을 형상화 했다고 보는 설이 정설이다. 최승희 탄생 100주년기념 공연으로, 정명자가 재해석하여 2011년 예악당에서 발표한 '가무보살춤' 작품이다. 정명자 * 한국국악협회이사 * 예빛아트 대표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수자 (2023년) *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이수자(2003년)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제 9호. 대구살풀이춤 이수자(2011년) * 제3회 장흥전국전통 가무악대제전 종합우승 대통령상수상( 20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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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한국문화원 특별전, 대한제국 궁중 가무악주일한국문화원은 오는 4일부터 내년 3월 16일까지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문화유산 '임인진연도(壬寅進宴圖) 병풍'을 주제로 한 기획전 '임인진연도병 속 조선왕실의 춤과 음악'을 연다고 2일 밝혔다. 국립국악원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인 '임인진연도 병풍'에 초점을 맞춰 대한제국 시기 궁중잔치에서 선보인 춤과 음악을 소개한다. 이 병풍은 1902년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해 열린 잔치 모습을 담았다. 기로소는 조선시대에 70세가 넘은 고위 관리를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임금은 이보다 이른 나이에 입소하기도 했다. 임인진연도 병풍은 대한제국 시기 중요한 궁중 행사를 상세히 기록했고, 당시 궁중 무용 종목과 악기 편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음악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에서는 임인진연도 병풍을 펼쳐서 공개하고, 병풍에 등장하는 무용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전통 악기와 복식 자료 20점도 나온다. 공형식 문화원장은 "전시를 통해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전통음악의 매력이 널리 소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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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무형유산 공연 ‘무형성찬(無形盛饌)’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송년공연 '무형성찬無形盛饌'을 12월 9일 토요일 오후 4시,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전북 전주시)에서 개최한다.'무형성찬無形盛饌'은 한국적 정서에 녹아있는 한(恨)과 신명을 젊음·동시대·명인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는 공연으로, 안대천(고성오광대 이수자), 이주원(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의 사회로 음악과 무용, 명인, 민요, 젊음을 주제로 가무악희가 종합 구성된 공연이 준비됐다.먼저, ▲ 음악의 성찬에서는 재즈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장은 엘에이씨(LAC)밴드가 새롭게 구성한 <종묘제례악 전폐희문>, <아희원람 중 연날리기>을 연주한다. 소리꾼 정윤형과 배장은 엘에이씨(LAC)밴드가 판소리 적벽가 중 ‘불지르는 대목’을 소리와 재즈의 향연으로 함께 펼치는 합동 무대가 준비된다.▲ 무용의 성찬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안덕기(처용무 이수자) 교수의 무용단안덕기움직임연구소와 예술단체 거인아트랩의 <현의 소리, 그 여백을 물들이다>가 공연된다. 살풀이춤의 미학과 거문고를 비롯한 한국 악기들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무대를 만날 수 있다.▲ 명인의 성찬에서는 사물놀이의 대명사 김덕수 명인이 선보이는 <올림>의 첫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전통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경기무속음악 중 올림채 장단을 활용해 화려한 리듬과 정제된 음악의 신명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김덕수 명인과 색소폰 연주자이자 제작자(프로듀서)인 제이슨리, 베이스 연주자 스노전이 함께 연주한다.▲ 민요의 성찬에서는 한국의 샤머니즘, 노동요, 전통장단 등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어 현대적 이미지와 감수성으로 재해석한 음악을 선보이는 국악밴드 ‘더튠(THE TUNE)’이 선보이는 민요를 만날 수 있다.▲ 젊음의 성찬에서는 연희공연단체 ‘처랏’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연희의 흥과 멋을 전할 예정이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옛 궁중에서 연행되던 잔치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된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고, 다가오는 2024년 새해를 앞두고 희망찬 기운을 선사하는 신명나는 잔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연 예약은 11월 29일 오전 9시부터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을 통해 가능하며, 무료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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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1일 가무악동천(洞天) 명인전(사)한국민속예술진흥원 담양군 지부와 선궁전통예술원이 주최하고 선궁전통예술보존회가 주관하는 2023 전라남도 지역대표 공연예술제 '가무악동천(洞天) 명인전'이 12월 11일 담양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다. 제1부에서는 정명숙(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보유자)의 살풀이춤, 김수연(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의 춘향가 중 이별가, 김청만(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의 고수, 원장현(원장현류 대금 창시자)의 순천만갈대소리 외, 국가무형문화재 예천통명농요보존회의 '예천통명농요', 우정문 (국가무형문화재 한승호제 판소리 보존회장)의 적벽가와 새타령이 펼쳐진다. 명인전 무용 반주는 장구에는 김청만, 대금에는 원장현, 징에는 이치종, 아쟁에는 이관웅, 구음에는 우정문이 맡는다 기획 및 연출에는 우지민(한국민속예술진흥원 담양군지부 지부장)이 맡는다. 제2부에서는 전라남도 지역 국악 예술인의 무대로 김덕숙의 ‘한국무용’, 용의 울림의 ‘마당극 용(龍)소의 꿈’, 문성채 ‘대금 독주’, 장유진·박준희의 '생황+25현가야금 협주', 풍물천지 아리솔의 '사물판굿'이 선사된다. 주최측은 "국악의 성지인 천년 담양을 알리며, 전통문화를 빛낸 수많은 명무·명창· 명인이 탄생한 담양에서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지역 국악예술인의 화합과 문화예술발전에 이바지하고 영·호남 문화교류에 기여하고자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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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 명인 이관웅 전통음악 발표회 ‘초심(初心)’아쟁 명인 이관웅이 오는 8일 오후 4시 전북 전주 전주대사습청에서 전통음악 발표회 ‘초심(初心)’을 연다. 이관웅은 어려서부터 부친 고(故) 이성진 선생에게 국악 교육을 받았고, 그 후 김일구 선생에게 아쟁을 배웠다. 또한 아쟁 외에 작곡과 지휘에도 깊은 내공을 쌓았다. 전국 국악 경연대회에서 장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이론 전공) 학위를 취득하는 등 오랜 연주 경력과 뛰어난 기량으로 작곡과 연주가로서의 위치를 굳혀왔다. 특히 작년 제20회 전국국악대제전에서는 종합대상(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관웅은 국악 가족으로 유명하다. 이관웅은 부친인 이성진 선생의 뒤를 이어 국악인이 되었고, 슬하 3남 1녀도 모두 국악에 몸담고 있다. 현재 장녀 이가은(22)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장남 이재영(21)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차남 이근영(18)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삼남 이규영(15)은 국립전통예술중학교에 각각 재학하고 있다. 전주대사습청이 주최하고 한푸리 가무악 코리아가 주관하는 이날 공연에서 이관웅은 동편제 소리를 바탕으로 섬세하면서 굵직한 성음을 보여줄 예정이다. 장단별로 다양한 청(본음)의 변화와 개방현을 눌러 표현하는 가락 위주로 구성된 김일구류 아쟁산조 독주(이관웅)와 합주(이관웅·이규영 외 15인의 제자), 그리고 민요 <흥타령> 등을 소개한다. 특히 3남 1녀도 찬조 출연해 가야금산조 독주(이가은), 해금산조 독주(이근영), 태평소 시나위(이재영)와 사물놀이(북: 이근영)를 선사하며 국악 가족의 면모를 보인다. 예전의 국악인은 제대로 대를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움의 길이 험난하고 소위 ‘밥벌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가족이 모두 국악에 열정을 쏟고 있고 아버지와 자식들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우리 국악계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공연을 앞두고 이관웅은 "어릴 적 제 눈에 빛이 나던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크게만 느껴집니다. 큰 무대, 작은 무대 가리지 않고 늘 연습하고 노력하셨던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후배로서 서는 이번 무대가 두렵고 작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족이 힘을 모아 감사의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아쟁 소리는 아녀자의 슬픔이 아닌 남정네의 눈물과 같다고 흔히 말한다. 마치 오열하는 듯 무겁고 장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쟁의 멋과 맛을 이관웅이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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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다시 피리를 마주하다: 박범훈 명인갑작스러운 찬 바람으로 계절이 바뀜을 실감하게 되던 11월의 어느 날, 곧 있을 ‘박범훈류 피리산조 연주회: 회향(回向)’ 연주회 준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신, 국악계의 원로 박범훈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만났다. 120명의 연주자와 함께 할 이번 공연부터, 피리산조, 배움과 가르침, 전통과 창작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A. 국악계에 남은 생을 기여하고자 노력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품도 열심히 쓰고, 지휘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즘은 40여 년 전에 스승(지영희)의 가락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피리산조를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전승, 보존하는 데에 힘쓰고 기여하고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에게 허락되는 데까지, 이렇게 계속 국악계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선생님께선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석좌교수를 맡고 계시죠.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2023년 서울캠퍼스에 개설되었고, 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신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학과 운영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A. 예. 입학 정원은 15명이었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 안에 국악과를 설립해 주었다는 점에서 동국대 측에 참 고맙죠. 아직 설립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학부 과정 외에도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 통합과정까지 모두 만들어져 있어 한국음악과의 앞날이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문화재급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불교음악과 맥을 같이 하며 포교를 위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 국악과와 비교했을 때 수업 과정 등에 차이가 있나요? A. 큰 차이라기보다는,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데에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공수업에서 학년별로 배워야 할 커리큘럼만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개개인 학생의 역량에 맞추어 가르칠 것을 정한다는 거죠.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상의하고, 흥미나 보완점 등을 찾아 그에 맞춘 전공 수업을 하는 겁니다. 또 가무악을 함께 가르치며 지휘, 무용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합니다. 그러한 맞춤 수업이 이 시대의 전통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국악계가 더욱 발전하는 큰 초석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맞춤형 수업이라니, 개개인의 역량이 더욱 늘 수밖에 없는 좋은 수업이네요. 학생들의 미래가 함께 기대됩니다. 요즈음 준비 중이신 11월 25일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20명이 연주하는 피리의 향연이라는 부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요? A.이번 공연은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교수부터 연주자, 학생, 취미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제게도 참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네요.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문중들이 한데 마음을 모아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죠. 떼 피리로 연주하는 겁니다. 프로그램 순서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대의 첫 막은 이 피리산조를 잉태한, 모태가 되는 경기시나위를 연주합니다. 특히 지영희 선생님의 첫 제자인 최경만 선생이 연주함으로 더욱 의미가 있죠. 그 외에도 제가 산조를 만들 때 많이 참고했던 지영희 선생님의 해금산조 연주도 있고, 박범훈류 피리산조에 관해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중 토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Q. 공연 기획부터 함께함의 목적에 이르기까지 참 뜻깊은 무대가 아닐 수 없네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창시하신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지영희 경기시나위를 모체로 조와 다양한 전조 등을 활용하여 창시한 산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영희 선생님의 경기시나위와는 차별을 둔 부분, 즉 작곡가, 창시자로서 선생님만의 특수한 주안점을 두고 만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산조를 만든다는 건 산조의 틀, 짜는 기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죠. 또 악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피리산조의 경우 피리로 불었을 때 특징이 드러나는 산조여야 합니다. 그 가락을 대금이 불어서 더 좋으면 과연 피리산조로써의 매력이 있을까요? 산조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자가 만들어야만 값어치가 있습니다. 전 산조를 만들며 피리의 특수 주법이나 특징, 그리고 독창성을 다르게 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Q. 박범훈류 피리산조에는 경토리가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잖아요. 경토리를 산조에 녹여낼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A. 보통 산조에는 전라도의 남도제가 많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지영희류 해금산조, 지영희제 경기시나위에는 경기제. 즉 경토리의 특징이 특히 강합니다. 경기 시나위에는 경토리와 계면조의 특징이 모두 녹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꺾는 음도 남도제와는 조금 다르고, 계면조라고 해도 너무 심각하거나 애절하지만도 않죠. 또 경토리와 계면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피리의 특징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속음악과의 관계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무속음악에서 피리는 반주에 많이 쓰였습니다. 무녀가 노래할 때 조(key)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조에 맞추어 반주해야 하기에 관의 변화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제에서 주법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어요. 목튀김, 혀치기 등 특수주법이 아주 다양해졌죠. 피리만의 특징이 생긴 겁니다. 저는 그런 경기제의 특징, 피리의 주법을 제 산조에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들어보면 조성의 변화가 많고, 관을 올려잡고 내려 잡으며 주법이 많이 변화하는, 경토리가 도드라지죠. Q. 요즈음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유파를 만들고 산조를 기본으로 삼아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조를 어떻게 보시나요? 또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젊은 연주자들이 산조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 참 좋네요. 유파를 짜서 남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산조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하고, 악기의 특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게 중요하죠. 그 악기의 도사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산조의 틀. 즉, 장단, 조성, 시김새 등의 조건을 확실하게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저 즉흥으로 짜서 연주하고 남기기엔 생명력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연구하고, 연주하고, 기본적인 특징을 확실히 살린 후에 본인의 독창성이 입혀지면, 오래도록 남는, 인정받는 산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Q. 특히 선생님께선 수많은 창작곡을 오랜 세월 만들어 오신 작곡계의 원로시기에 더더욱 여쭙고 싶던 질문입니다. 전통이든 창작 음악이든, 창작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을 기본적으로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창작이라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에요.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거지. 음악에 들어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 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소리로써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항상 작곡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소리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라.’ 그러려면 인풋(input)이 정말 중요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곡이 나오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죠. 다양한 음악적 소양과 경험, 고민, 습득이 필요해요. 그렇게 내게 다양한 것들이 축적되면, 음악은 그때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음악을 만들고 나면, 결국 생명력을 가진 곡이 되어 오래도록 연주될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저도 그렇지만, 다양한 음악이 유입되고 수많은 장르가 뒤섞이며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대기에 더욱 이 시대의 전통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악인들이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전통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미(美)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저는 어느 자리에 있든 내 전공을, 음악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왜? 좋으니까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은 도중에 그만두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며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 고비를 끝까지 넘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그 마음가짐, 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놓지 않고 전통을 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 시대의 존경받을 원로로 통하는 박범훈 석좌교수가 전통 예술계에 오랜 시간 이바지하며 높은 평판을 이루어 온 데에는, 음악을, 창작을 전심으로 사랑해 온 꾸준한 세월이 있었다. 11월 25일 펼쳐질 그의 공연 제목은 ‘회향’. 긴 세월 쌓아온 음악을 돌아보며, 그 음악의 뿌리, 근원으로 돌아가 피리를 오롯이 마주한다는 의미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어온, 그리고 미래를 이을 박범훈류 피리 산조가 들려 줄 우리 음악에 대한 강인함, 사랑, 그리고 굳건함이 벌써 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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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몽골의 전통 가무악<1>대초원 호령하던 몽골 기마민족의 전통문화와 춤 2017년 9월 16일 몽골 국제울란바토르대학 초청으로 한국어 전공학생들을 위한 전통문화 특강과 공연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몽골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2년 용인대 재직시절 대학원생들과 문화탐사를 다녀온 지 15년이 흘렀기에 자못 궁금한 것이 많았었다. 과거 공항에 도착했을 때 초라한 몽골수도의 현주소를 보고 놀랐다. 세계사에서 가장 넓은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고 동서양 교류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칭기즈칸의 제국을 생각할 때 총인구도 200만 남짓(현재는 300만명)하였고 울란바토르 도시 규모도 60만 정도(현재는150만)로 기억되는데다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가 도시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고층빌딩은 별로 구경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발전과 변모된 모습이 궁금하였다. 그런데 밤늦게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가는 길목의 조명들이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국제 울란바토르대학교 초청 ‘한국의 탈춤’ 특강 및 시연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는 빌딩도 많아졌고 시내 도로도 정비가 잘 되어있었다.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칭기즈칸(과거에는 수흐바타르 광장, Sukhbtaar)광장이었다. 담딘 수흐바타르(Дамдины Сүхбаатар)는 몽골에 세운 러시아 백군의 괴뢰정부를 1921년에 격파하고 조국을 해방시킨 개국공신으로 독립영웅으로 받들고 있어 울란바토르 중심 광장에 수흐바타르의 동상이 서 있다. 점심을 한식당에서 마친 후에 국제울란바토르대학교로 찾아갔다. 대외협력처장이 일행을 맞이하여 총장접견실에서 총장이 음료와 다과대접을 해주었다.한국인이 설립한 국제울란바토르대학교는 1995년에 한국인이 몽골에 세운 대학으로 35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한국어과인 단과대학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사립 대학교 중 상위권을 유지하며 몽골의 명문대학교로 칭해지고 있다. 학교가 발전한 배경에는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몽골의 다른 대학교에서 시작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선진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이라 들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대학에서는 흔한 ‘동아리’ 시스템인데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 간의 협동, 학문 이외의 분야에서의 발전을 도우며 오늘날 국제 울란바토르대학교가 명문대학이 된 배경에 기여했다고 한다. 5층 강당으로 올라가니 한국어과 학생 100여명이 일행을 맞이하였다. 대외협력처장의 간단한 소개에 이어 ppt를 준비하여 ‘탈과 탈춤’ 특강을 하였는데 몽골인 교직원이 통역을 아주 잘 해주어서 막힘없이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이어서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탈춤시연으로 취발이마당을 필자가 취발이 배역을 하였고, 샌님 미얄 포두부장마당을 보여주었다. 탈춤 워크샵으로 기본춤 따라 배우기를 한 다음 기념촬영으로 끝맺음을 하였다. 몽골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극장에서 펼치는 몽골 전통가무악 한마당 공식일정인 특강과 시연을 마친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원들의 다음 일정은 몽골 민속공연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식 건물 기둥마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멋진 분홍색과 흰색으로 채색한 아담한 건물이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National Academic Drama Theatre)임을 알 수 있었다. 촬영 허가를 받는데 미화 50달러를 요구하여 잠시 망설이다가 아쉽지만 지불하고 입장하니 앞자리는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2층 앞 가운데에 비디오 촬영기를 설치하였다. 2002년에 몽골을 방문을 했을 때는 통로까지 꽉 차 숨 막히던 열악한 소극장무대였지만 몽골 전통춤과 음악 공연이 끝난 다음 우리 일행들이 예술단장과 단원들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주며 격려했던 일이 생각나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황제 황후의 궁중춤' 군무 막이 올라가고 첫 무대는 세계를 제패한 칭기즈칸의 후예들로 장군복을 입은 장수들과 황후귀족들만이 쓰는 높은 모자 복타크(boqtaq)와 긴 치마복색을 한 귀족여인들의 합동군무로 장엄한 춤판을 열었다. 하수 쪽에서 장군들이 열을 지어 등장하고 상수 쪽에서 귀족여인들이 점잖게 등장하여 시종 느리고 위엄 있는 궁중춤으로 서막을 장식했는데 몽골 여러 부족이 힘을 합쳐 통일된 몽골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두금(Morin Khuur)과 후미(Khoomi) 연주 이어서 전통악기 ‘마두금(馬頭琴, 모린 후르, Morin Khuur)’과 피리 연주에 여성 2인조 ‘허미(Khoomi)’소리로 청량하면서도 대초원의 해맑은 바람소리 같은 몽골전통성악을 들려주었다. 마두금과 연주는 유네스코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유산)'으로 2008년 선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몽골 사람들의 일상에서 친숙하게 찾아볼 수 있고,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때로는 웅장하기까지 한 음색은 몽골 고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듣는 이에 따라 몽골의 초원에서 부는 바람 소리, 야생마가 우는 소리, 말발굽이 지축을 울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초원의 바이올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2008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후미(Khoomi)는 배에서 나오는 소리와 두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한꺼번에 한 사람이 내는 몽골전통 창법이다. 광활한 자연이 들어있는 노래로 바람소리, 동물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어있으며, 한 음으로 들리지 않고 두 개 이상의 음이 배와 목을 통해 동시에 발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몽골청년들의 춤 마두금 반주음악에 젊은 몽골남자들의 일상생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창작춤이었다. 핀 조명이 들어오자 가운데 몽골주택 게르(ger, 중국은 파오(包), 중앙아시아는 yurt) 형상처럼 뭉쳐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비추었다가 점점 조명이 퍼지며 한사람씩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하루일과를 준비하는 장정들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점점 음악이 빨라지면 움직임도 빨라지며 말을 타고 평원을 누비는 몽골남자들이 강인한 투지와 적응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몸집 좋은 젊은 남자 무용수들로 구성된 장정들의 활기찬 전통춤은 대단히 빠르고 역동적인 발놀림은 힘이 가득 찬 기마민족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어깨의 율동을 많이 이용하는 몽골 남자들의 춤사위가 우리나라의 어깨춤의 발상지임을 증명하듯이 비슷한 점도 발견하였다. 전통악기 합주와 후미(Khoomi) 이어서 8명이 연주하는 전통악기들의 합주와 남녀 혼성 후미(Khoomi)를 들려주었다. 몽골과 부랴트족의 전통악기인 모린후르(마두금, Morin khuur), 가야금과 비슷한 야트가(yatga), 해금과 같은 2현의 후치르(khuuchir), 월금(月琴)과 같은 3현의 샨즈(shanz, Chanza), 양금과 비슷한 여친(yoochin), 호른(horn)같은 에버부레(ever buree)와 플루트 등의 악기 연주와 반주로 진행하였다. 특히 마두금은 흉노 시대에 한 남자가 자기를 구해준 말을 그리워하면서 처음 만든 악기로 당시 나무로 말머리를 만들고 말 꼬리털로 두 줄을 만들어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두금 반주로 전통 복장의 몽골 여자 가수가 부르는 민요는 몽골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두금이 연주되고 몽골의 여인들이 몽골 초원의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몽골의 한 초원 안으로 초대받은 듯한 신비감을 느꼈다. 몽골의 서쪽, 알타이(Altay) 지방에서 시작된 이 몽골 특유의 후미의 소리는 초원에서 불어오는 맑고 청아한 바람소리처럼 시원하게 오다가도 갑자기 사람들을 초집중하게 하는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공연장을 채웠다. 대지를 울리는 듯한 저음과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한 맑은 고음이 동시에 발성되는 '후미'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마치 악기 소리처럼 들리는 고음과 저음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거나 또는 동시에 발성법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발성법으로 인해 모린후르(마두금, Morin khuur)와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되었다. 사발춤(Ayagatai bujig) 여성무용수들이 여러 개의 마유주잔이나 사발을 포개어 들고 천천히 양옆에서 등장하여 무대 앞에 잔을 내려놓고 몽골 전통춤사위를 보여주고 다시 각자의 술잔을 들어 객석을 행해 환영과 행운을 비는 덕담소리를 하였다. 마치 한국에서 궁중정재를 추다가 멈추어 창사(唱詞)로 왕업을 칭송하는 소리를 하는 것과 같이 환영소리를 한 다음 술잔을 머리에 얹고 묘기춤처럼 추었다. 불교의례춤 참(Tsam) 참(Tsam)은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풍년과 인간의 소원을 부처님께 기원하는 뜻으로 추는 의식무용이다. 먼저 백노인이 산신령처럼 하얀 수염에 대머리 큰 가면을 쓰고 하수 앞쪽에서 지팡이와 염주를 들고 등장하여 무대 중앙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느리게 걷다가 무릎들기를 하며 반복적으로 돌다가 상수 뒤쪽으로 가서 뒷막을 지팡이로 건드리자 뒷막이 올랐다. 여러 마왕과 동물탈을 쓴 참 배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곡예춤 몽골의 곡예는 특히 마상곡예와 인체곡예가 유명하지만 극장이어서 마상곡예는 한계가 있어 공연을 할 수 없었고, 연체동물처럼 유연성을 극대화한 2인 곡예춤을 보여주었다. 몽골의 동쪽지역에 사는 부족의 어린 소녀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곡예로 인체관절의 가동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묘기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관현악과 후미의 대합주 마지막 공연으로 몽골 전통악기로 이루어진 전통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대합주가 시작되었다. 대합주에는 지휘자가 등장하여 서양식 오케스트라 연주방식으로 칭기즈칸이 출전 당시에 연주하게 했던 대마두금과 서양타악기까지 등장하여 후미를 부르며 몽골인들의 삶의 애환과 행복을 전하는 연주를 하였다. 13세기에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전래된 우리나라 가야금인 야트가(yatga)도 대합주에서 대표 악기로 연주되고 있었다. 현재는 몽골악기 야트가로 연주하고 있지만 2002년 몽골에 왔을 때는 우리의 가야금을 그대로 수입하여 연주하고 있어서 우리일행 중의 가야금 연주자가 뒤풀이에서 한국가야금 연주법대로 연주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이 몽골 민속 관현악단은 주로 독주곡을 연주하는 많은 현악기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어렵다고 하나 각 현악기들이 특색 있게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관현악단 수준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몽골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과 예술단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극장 각 분야 예술단이 연합한 전통예술공연에 해당하는 것으로 웅장한 대극장 규모는 아니지만 깔끔한 중극장 무대였고 몽골예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예술무대였다. 90분 동안 몽골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무대예술로 승화시켜 악가무희(樂歌舞戱) 일체감을 형성한 점도 뛰어났다. 다만 전통문화를 예술로 재탄생시킨 점은 뛰어났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형식의 무대로서는 전통성을 살리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창작적으로 너무 꾸민 점과 마지막 관현악 협주가 30분을 넘게 차지하는 비중으로 관중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한 점이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매일 저녁 6시 공연으로 외국 관광객들에게 몽골의 공연예술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점과 객석을 가득 채운 극장분위기도 한 몫을 하면서 품격있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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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북연주와 진도북놀이의 위상' 국제학술회&제3회진도북페스티발학술난장, 놀이난장, 국내외 아시아 연구자와 공연자들이 진도에 모인다. 진도군이 주최하고 국립남도국악원과 진도북놀이보존회가 주관한다. 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원장은 "한국에서는 보통 한 손에 채를 쥐고 북을 연주합니다. 하지만 진도북놀이(북춤)는 양손에 채를 쥐고 연주한다고 해서 ‘양북’이라고 합니다. 상여 운구에 사용되었다는 고대의 기록과 증언이 있습니다. 전통 장례의식과 관련된다는 뜻입니다. 모내기할 때 의례나 퍼포먼스로 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북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류 최초의 악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진도학회 이윤선 학회장은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동아시아 여러나라 북놀이와 진도북놀이를 비교해보고 그 위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북을 비교해봅니다. 향후 아시아의 더 많은 전통을 비교해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장차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북놀이를 묶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놀이(북춤)는 인류가 영원히 보존하고 전승해가야 할 문화유산입니다. 흥미로운 발표와 신명 넘치는 공연일 것이니 많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늘 생각해오던 바를 실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연구자와 지역민이 총화를 이루는 컨셉, 마땅히 지역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지역학회가 꾸려야 할 몫일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전남무형문화재 진도북놀이보존회 이희춘 회장은 "당대 명북수 김행원(김득수 부친)과 박태주선생의 예술성을 계승한 양북놀이는 1987년 진도북놀이로 지정되고 전국적 인기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 영고,무천, 동맹이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진도북페스티발은 세계인의 축제로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11월 2일 학술대회는 하미순(진도학회 총무이사) 사회로 진행되며 이윤선 진도학회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국립남도국악원 명현 원장의 환영사, 김희수 진도군수의 격려사로 문을 열 예정이다. 1부 아시아의 북울림 1 좌장: 이용식(전남대학교 교수) 인도북춤의 역사와 특징/프라딥타 구마르 모하라나(푸스프비하르, 비를라 비디야니케탄 교사) 인도네시아 뚤룽아궁 지역의 북춤 "레옥 끈당"의 신화와 표상/정지태(가자마다대학교 연구원) 대만의 북의례에 대하여-지역신앙과 신체(台南三股龍德宮_跳鼓陳)/차오바후이(角八惠, 耳邊風工作室, 대만 바람과 귀 스튜디오 대표) 2부 아시아의 북울림 2 좌장: 최헌(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중국의 북춤과 운남영상(줌발표)/장웨이(張巍, 중국 베이징무용대학교 연구원, 特聘研究员) 남일본의 북춤-신앙, 세대, 젠더/아라키 마호(荒木真歩, 고베대 박사과정) 전통적이고 혁신적인 필리핀 악기/로돌포 리베슈(산오거스틴대학교 문화예술감독) 3부 진도북놀이와 북춤 좌장: 송혜진(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진도북놀이(양태옥류, 박관용류, 장성천류)-무형문화재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박강열(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박병천류 진도북춤의 특징/강은영(박병천북춤보존회 이사장) 종합토론 좌장: 나승만(목포대학교 명예교수) 진도북의 전통과 아시아 북연주 비교 토론자: 발표자, 토론자, 번역자, 통역자, 방청객 전원 3일 진도북 페스티탈은 이윤선 회장의 진행으로 개회식에 이어 공연은 2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제1부 축제 북소리에 담다 1. 뿌리깊은 나무.......타악그룹 얼쑤, 나빌레라무용단, 소리꾼 김은비 2. 양태옥류 진도북놀이......박강열 외 보존회원 3. 광양버꾸놀이........광양버꾸놀이보존회 4. 문둥북춤......고성오광대보존회 5. 서한우버꾸춤........서한우버꾸춤보존회 6. (국제) 자연파괴와 갱생의 일곱날.............필리핀 전통음악단 7. 박관용류 진도북놀이........이희춘 외 보존회원 제2부 북으로 하나되는 축제 1. 울림의 향.........김죽엽무용단, 퓨전타악 자유 2. 박병천류 진도북춤.........무가향 몸짓 3. 밀양오북놀이.......밀양백중놀이보존회 4. (국제) 인도의 전통북 연주.........인도 뮤지션 5. 장성천류 진도북놀이........김병천 외 보존회원 6. 대동 한마당굿..........전 출연진과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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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국악의 향연' 가무악 공연국립남도국악원은 오는 11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대극장 진악당(전남 진도)에서 가·무·악(歌·舞·樂) 종합공연 '국악의 향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국립남도국악원 국악연주단이 준비한 가·무·악 종합공연 '국악의 향연'으로 판소리, 무용, 기악공연을 한자리에 구성하여 총 70분 공연으로 다채롭게 꾸며질 예정이다. 기악합주 '도드리'를 시작으로, 심봉사가 맹인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난 여정을 그린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 올라가는 대목'이 펼쳐진다. 국악기 중에서도 구슬픈 성음이 특징인 아쟁 두 대로 선보이는 '박종선류 아쟁산조', '늙어지면 부귀와 공명을 버리고 산천풍월 명당을 찾아 그 늙음을 즐기리라'라는 내용을 담은 가야금병창 청석령 지나갈 제를 선보인다. 나라의 평안과 성스러운 군주가 다스리는 시대를 기원하는 '태평무', 물레에서 실을 자아낼 때 부르는 노래인 '물레타령' 등이 준비됐다. 마지막으로 남사당패와 같은 유랑 예인집단의 놀이 중 접시나 대접을 담뱃대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돌리며 노는 '버나놀이'를 공연한다. 공연은 무료이며, 공연 전후 진도 읍내와 국악원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또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12월까지 공연 스탬프 쿠폰 이벤트를 진행하여 참여한 관람객들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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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국악체험관’개관올해로 개원 15주년을 맞은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은 교육․체험․강연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국악체험관’의 개관식을 10월 27일(금) 오후 4시 30분 국립부산국악원 야외광장에서 개최한다. ‘국악체험관’은 21,350㎡에 달하는 국립부산국악원 앞마당 부지에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연면적 24,990㎡ 규모이다. 대강습실 2개, 중강습실 2개, 소강습실 4개 및 디지털자료전시실 2개, 실감 전시실 2개 등으로 구성되어 지역주민 및 관광객 대상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자 한다. 국악체험관 개관식에는 부산지역 주민, 정·관계 및 국악·예술분야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식은 길놀이와 동래학춤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유공자 포상과 축사, 축하 공연, 시설 관람 등으로 진행한다. 새로 개관하는 ‘국악체험관’ 외벽에는 미디어파사드를 설치하고, 내부 전시실은 디지털자료 열람 전시실 1관과 2관, 실감 전시실 1관과 2관 등 총 4개 전시실이 마련하였다. 디지털자료 열람 전시실에서는 국립부산국악원이 수집한 자료들 중 ‘영남의 악가무 기초자료’와 ‘영남 공연예술 무형유산자료를 인터렉티브 방식으로 열람할 수 있다. 한편, 실감 전시실에서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국악 자원인 영남 춤을 몰입감 있는 실감 콘텐츠로 감상할 수 있으며, 영남 민요와 함께 인터랙티브한 악기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또한 2009년부터 3개의 강습실에서 시작한 5종의 교육·체험 프로그램은 ‘국악체험관’의 개관을 통해 8개의 강습실이 추가 확장되면서, 총 15종의 프로그램으로 확대 운영한다. ‘국악체험관’을 개관하는 올 하반기부터 K-어린이연희단, 영남춤교실, 국악문화학교(심화반)을 확대 운영 중이며, 2024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국악교육 활성화>, 청년·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국악 매개자 육성>, 일반인·외국인를 위한 <국악 여가 활성화>, 취약계층을 위한 <국악과의 동행> 등으로 어린이부터 외국인, 문화소외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정엽 원장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 정체성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전하며, "국악체험관의 개관을 계기로 국립부산국악원은 앞으로도 질 높은 프로그램 제공과 함께 지역 주민 및 관광객 모두가 다양한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국악체험관’ 개관을 기념하여 10월 27일(금)부터 12월 31일(일)까지 국악체험관 2층에서 사진공모전 수상작 및 역대 공연 포스터를 전시한다. 공모전은 지난 9월 18일(월)부터 27일(수)까지 진행했으며, 국립부산국악원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사진 총 103건 중 25점을 선정했다. 응모 작품은 국립부산국악원의 다양한 공연, 교육, 전경 등으로 독창적인 시각과 감성을 담은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민과 함께하는 국립부산국악원의 역사와 활동을 담은 소중한 기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악체험관‘ 개관과 연계하여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개관식 후에는 개관기념 공연으로 부산 지역의 전통춤인 ‘동래학춤’을 소재로 한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를 10월 27일(금)~29(일)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 연악당에서 3회 개최한다. 극은 광복 직후, 어수선한 시대 배경 속에서 이름도 없이 뒷밀이(손수레를 뒤에서 밀어주는 직업)로 불리던 한 청년이 우연히 ‘동래학춤’ 사진 한 장을 보며 삶이 송두째 바뀌어 춤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한, 공연과 연계한 사진전도 연악당 로비에 전시된다. <춤바람 분데이> 사진전은 극의 시·공간적 흐름에 따라 구성해 뒷밀이가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빛바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광복 전후 부산의 켜켜이 쌓인 퇴적 같은 역사의 풍경, 그 속에 지역민의 삶이 녹아있는 신명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10월 28일(토)은 공연과 연계한 인문학 강연 <이야기마당 덤덤덤>을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를 통해보는 부산의 문화유산과 신명의 가치‘를 주제로 개최한다. 안경모(춤바람 분데이 연출) 연출자와 함께 해방 전후 부산의 풍경, 그리고 공연이 제작과정 등을 공유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공연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한 문화향유의 장이다. 그리고 10월 29일(일)에는 명사초청시리즈 <부산 동래의 전통예술>를 개최하여 부산 ‘동래’를 주제로 국악인 손심심(동래야류 보존회장), 김준호(동래지신밟기 보유자)와 함께하는 렉처 콘서트를 펼친다. 동래덧뵈기 비밀 암호,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_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어 주기는 어렵다)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전통예술의 진수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개관식, 공연 및 강연 예약의 자세한 사항은 국립부산국악원 누리집 및 전화(051-811-0114)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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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타고난 안무가 전황의 춤인생과 예술세계국악계로 지평 넓힌 정통파 무용가 이매방(1927-2015.8.7,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27호 승무보유자), 강선영(1925-2016.1.21.,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보유자), 김덕명(1924-2015.10.24, 경남무형문화제 제3호 한량무보유자) 전황(1927-2015,5,16,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국립창극단장)등 원로무용가들과 중견무용가 정재만(1948~2014), 임이조(1950~2013), 지희영(1949~2015) 등의 작고는 격동기 근대무용사의 산증인들이자 역사적인 인물들, 과거사를 증언해주고 알려줄 대영박물관과 같은 역사자료가 소실된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전황선생님은 80대에도 청년같은 외모와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현장에서 유일한 원로관객으로 뵙던 분으로 가장 장수하실 것 같았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전황선생님을 뵐 때마다 늘 말쑥한 양복차림, 반듯한 자세로 빼어나게 멋진 노신사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불가사이한 점도 많은 분이라는 데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80대 고령임에도 청년같이 건강하고 멋지고 미남인 신사로 사셨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세계적인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정통파 제자이면서 몇 안 되는 남성 한국무용가인데 어찌하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인들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가? 타고난 공연예술의 스타집안과 성장배경 전황(全璜, 본명 전두황)은 1927년 3월8일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에서 전영술과 신명이의 5남3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전영술은 함흥시 재판소 앞에서 사법서사를 하며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부친은 해방 직후에 작고하였고, 모친은 6·25전쟁 직전에 작고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형제자매들이 대중스타로 우뚝 솟아 있었기에 전황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맏형 전두옥은 역시 함흥출신 무용가 조택원과 고향친구였고,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절친으로 영화배우 겸 권투선수였으며, 중국에서 배운 18기 무예를 이 땅에 처음 들여왔고, 승용차를 팔로 끄는 차력도 자랑했다. 누나 전옥(全玉, 배우, 본명 전덕례, 1911~1968)은 ‘눈물의 여왕’으로 무대와 스크린의 톱스타인 그녀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셋째형 전두철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사촌형 전운봉은 남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였고 북쪽에서도 인민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누나 전옥과 매형 강홍식(姜弘植, 1902~1971, 이시이 바꾸의 제자, 해방공간 당시 북조선영화촬영소 부소장, ‘봄타령’을 처음 부르고 유성기음반 취입한 가수)의 딸 강효실(姜孝實, 1932~1992)도 다 아는 영화배우이며, 강효실의 아들 최민수도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전황의 가계가 한국 근현대공연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황의 딸 전미례는 본래 한국무용을 전공하였지만 아버지처럼 분야를 바꾸어 ‘재즈계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황의 어린 시절 누나 전옥이 함흥 진사관에 공연하러 고향이 오면 집 앞에는 스타 전옥을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때 열서너 살 된 전황은 자랑스런 누나의 연극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공짜손님으로 극장을 드나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황은 1941년 함흥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 젖어들어 갔으며, 맏형 전두옥의 영향을 받아 1946년(19세)까지 권투선수생활을 하면서 강인한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을 단련하였다. 이러한 가계내력과 성장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국가적인 스타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형제들과 친척들이 예술가들이 많다 보니 전황도 자연스럽게 그런 무용, 국악 등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다. 또 새로운 문물, 스포츠,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물과 예술에서도 적응력이 강하여 뛰어난 연기력, 체력의 유전적 DNA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황선생님의 인물치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이러한 천부적인 집안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유명 연기자들과 예술스타들이 타고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이 가미될 때만이 보석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말년까지 정정하고 강건한 자태와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맏형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권투선수의 기초훈련에서 익힌 날렵한 잽 동작과 발 스텝과 빠른 호흡과 민첩성 등으로 무용가로서의 유연성과 리듬감,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신체적 바탕을 갖추게 된 것임도 알 수 있다. 최승희 제자로의 입문배경과 공연활동 전황의 춤인생은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도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와의 조우에서 비롯하였다. 1947년 3월 최승희가 전황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남녀무용수 단원을 한명씩 뽑는다는 소식에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하였다. 전황은 젊은 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여 오디션을 받았는데 뜻밖에 최승희의 눈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남자로는 유일하게 합격통지를 받고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으로 무용경력도 없었던 전황은 1등 합격으로 운명적인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권투선수로 다져져 손발이 빨랐고 눈썰미가 좋아 최승희의 춤시범을 센스있고 날렵하게 잘 따라 추어 무용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평양의 최승희무용연구소(1946년 8월 개소) 3기 연구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하고많은 거 놔두고, 남자 놈이 춤을 추냐’고 반대했었다. 전황은 집에 있는 공기총과 아코디언을 팔아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갈 여비를 만들었다.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받는 국비 400원과 전옥누나에게 받은 용돈 50~100원, 어머니가 보내주는 100원으로 생활비를 삼아 알뜰하게 살면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30여명의 연구생이 묵는 기숙사생 중에서 최승희의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배우는 수제자로 발탁됐으며 이로 인해 국비를 3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당시 북측 정부에서 최승희에게 국비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승희와 안막선생님께 면회를 요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하니 국비 중에서 추가로 200원씩 더 지급해 주었다. 이곳에서 전황이 신흥(新興)무용(지금의 현대무용), 조선춤, 남방춤, 러시아춤, 발레 등을 배울 때 바로 위 선배로 김백봉도 있었다. ‘딴 딴 따따딴, 딴 딴 딴딴딴’ 최승희선생이 북을 치면 그대로 발맞춰 따라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웠다. 반주악사가 없을 땐 리듬감각이 탁월하다며 북과 장구를 치게 했던 것이 국악을 섭렵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렇게 국악에 눈떠 훗날 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낸 바탕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그 후 전황은 국비 외에 800원의 월급도 받았는데, 그에겐 금전적인 수입보다 4년 동안 허실없이 배운 최승희 안무법과 음악선택법이 소중할 뿐이었다. 최승희 안무의 ‘초립동’은 안성희에게 배워 1947년(20세)에 추었다. "최승희 선생은 히스테리가 많았어요. 1948년 평양예술극장에서 제가 안성희·김백봉과 3인무 ‘옥중투사’를 추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어머님과 사람들이 ‘황아! 황아!’ 부르며 야단이셨죠. 그 소리에 저는 춤순서를 잊어버렸죠. 결국 최선생께 혼나고 긴 손톱으로 꼬집혀 살이 뭉개졌죠.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셨고, 기억력, 창작력,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셨구요” 전황은 1948년 고된 훈련 중에도 단원들 누구보다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익히기에서 남다른 끼와 천부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최승희무용단원으로 중국순회공연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중국순회공연을 하던 중 매란방의 〈손오공〉을 보게 되었는데 분장실의 매란방은 남성인데도 춤출 때는 여자같이 곱게 추었다고 하였다. 당시 최승희는 안무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두 달 동안 몰래 숨어 ‘노사공’ 안무를 보던 전황이 결국 최승희에 발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은 ‘재주있는 놈’이라며 악사 옆에 앉아서 보라고 승낙하였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4년 동안 최승희의 작업, 공연, 생활 등 모든 것을 전황과 김백봉만이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1950년 6월 7일에는 100명 규모의 방소예술단원으로 출국하여 9일 걸려 러시아 모스코바에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달려야 역 하나가 나와요. 치타에 도착하니 거지 떼들이 몰려들어 돈 달라, 빵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우리도 기차 안에서 빵과 과자를 배급받아 먹었을 뿐인데...” 이런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 공연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정숙 단장이 ‘조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방소예술단은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였어요. 러시아 공연도 이미 약속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허정숙은 전쟁 중에도 예술단을 이끌고 공연을 감행하였지요.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공연장이었어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탱크가 돌고 10마리의 말이 거니는 규모였습니다.” 그 후로 예술단은 밤마다 이동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에 전황을 비롯하여 최승희무용단원들은 춤연습을 하다가도 폭격이 오면 최승희연구소의 지하실에 피하곤 하였다.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 구민관에서 ‘해방의 노래’를 공연했다. 어수선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장추화, 송범 등이 구경을 왔었다. 전황은 군인으로 위장하고 동양극장에 출연하는 전옥의 충정로 집으로 갔는데, 누나는 없고 그 집은 민청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전황은 이산의 고통을 억누르며 ‘초립동’과 ‘목동과 처녀’를 추었다. 춤출 때는 이산의 고통을 잊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날 꿈만 꾸었다. 1950년 8월 예술단은 광주. 목포(여기서 이매방이 안성희와 전황의 춤을 봤다는 생전 증언을 들었다), 군산을 순회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인 조치원에서 북한 군표와 남한 돈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전황은 남한 순회공연을 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되돌아가던 중 최승희의 딸 안성희 일행과 헤어졌다. 중도에 안성희는 인민군에 붙잡히지만 최승희의 딸이어서 평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을 전황은 최승희딸 안성희와 헤어져 빨치산 잔류들과 산을 타고 군화 소리 난무하는 평양에 겨우 도착하였다.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가니 러시아에서 공연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없었다. 양복과 구두 등을 챙겨 스승 최승희가 있는 자강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전황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평안도 석암에서 과일을 사러 가다 예술단 악사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최승희도 여기 있다. 자강도로 가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누나가 있는 남한으로 가라”하였다. 그때 안성희와 김백봉도 만났다. 그리하여 전황은 석암의 악사네 집 지하에 숨어버렸다. 순수예술가로 살 길은 남한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산길에서 사흘을 굶고 허기져 살길이 막막해 허리띠를 나무에 걸었다.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에 드라마같은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자 최옥삼(가야금산조 명인, 최승희 반주자)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며 말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숨은 사람들 대표로 전황이 미국 제일기갑사단 대적선전대를 찾아가 "최승희 제자지만 전옥의 동생”이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조카 강효실(당시 20세)은 작가 이서구(백조가극단 작품 집필)가 지프차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충정로 누님댁에 가니 누님과 재혼한 매형 최일이 있더군요. 후에 누님댁은 트럭을 빌려 부산으로 피란가고 저는 국민제일 군위병으로 뽑혔으나 늑막염으로 군면제를 받고 뒤늦게 부산으로 갔죠.” 전옥은 백조가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대스타인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등 백조가극단장 전옥의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작고 전에 현재 육군사관학교 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배밭을 소유했는데 남편 최일이 훗날 그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전쟁은 함흥부자인 전황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북한에 생활기반을 둔 채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부터 안무가로 인정받은 남한생활 1951년 부산피난시절 전황은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전옥누님이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과 무관하게 활동했다. 정인방이 전황을 찾아와 부산극장에서 공연할 무용극 〈처용랑〉의 마귀역할을 이인범(발레)이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대신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본도 없이 음악을 맡은 나운영의 집에 가 피아노곡을 듣고 안무하여 마귀옷을 입고 현대무용같은 발레를 추었는데, 안무를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1953년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춘앵 등이 주축인 여성국악동호회(여성국극의 효시, 1948년 창단)에서 활동하는 최승희 반주악사였던 박성옥을 따라 동래온천장에서 창극연습에 참가하여 유치진 작 창극〈가야금〉 초연 때 아쟁(박성옥으로부터 이미 배웠음)을 연주하였다. 그때 전황은 박성옥의 연주를 돕다가 한영숙의 춤 〈가야금의 노래〉를 보는데 안무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춤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햇님창극단장 김주전이 한영숙에게 전황이 최승희 제자니 한번 시켜보라는 귀뜸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한영숙이 전황에게 안무해보라고 부탁해 인정받은 것이 오늘날까지 안무가로 자신감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성군무인 만큼 춤은 추지않고 안무에만 열중하여 여성국악동호회의 후신인 햇님창극단은 잘 나가게 되었고 전황은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 〈햇님달님〉에서 라이벌인 박귀희(햇님)·김소희(달님)가 노래하고 안무는 전황의 몫이었다. 국악을 듣는 귀가 있으니 다른 이가 일주일 걸릴 안무를 하루나 이틀에 완성했다. 동래온천장 공연은 자금이 넉넉해 신선놀음이었지만, 여성국극단이 예닐곱 개씩 생기다보니 서로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고 결국 해체를 거듭하다 국립창극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출연료는 명창이 1만원, 악사는 9천원, 안무가는 6천원 정도 받았다. 돈을 벌게 된 23세 전황은 1951년 11월 이조판서를 지낸 집안의 딸 다섯 살 연하의 김봉선과 금정사에서 결혼하였다. 여성국극에 반한 동래여고 출신 김봉선이 햇님창극단 오디션에 뽑혀 무용수로 투입되면서 사귀다가 눈이 맞았었다. 처형이 예기 김강남월로 7세에 레코드를 취입한 천재소녀 명창이었다. 그가 소리한 뒤 순서에는 서로 무대에 나가길 꺼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당시 누님 전옥은 예술가가 일찍 결혼하면 신세망친다고 반대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를 했다. 첫아이는 출생 직후 죽었고 5년 후 태어난 전미례(52·서울전미례 재즈무용단대표), 죽은 딸의 이름 ‘미례’를 다시 붙였다. 전황의 2남2녀 중 맏딸 전미례만 춤을 물려받았다. 펄펄 나는 힘과 예술적 열정을 미국 재즈유학에 쏟았고 국내 재즈무용계 무용학 박사 1호를 기록했다. 6·25 전쟁 후 부산에서 북한 출신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 때 최승희 제자인 전황은 전옥의 신원보증으로 안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송범은 활동하지 않았고, 김백봉도 북한출신의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조용했었다.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국극판이었다. 김백봉, 강선영 등도 여성국극단에서 안무했었다. 국극에는 오프닝춤, 상징춤, 경사춤, 피날래춤 등 적어도 너댓 가지 춤이 필요했다. 전황은 국극을 안무하며 창을 계속 들었기에 귀명창이 되었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창을 들으며 누구보다 빨리 안무했다. 50여년 이상 국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안 되지만 손하고 가슴 속으로는 연주가 가능했다. 〈벌에 쏘인 꽃〉 등 수많은 국극과 창극을 안무했다. 대표작은 첫 작품인 〈가야금〉.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우륵을 따라간 가실왕과 그를 사모한 배꽃아기의 사랑이야기 자체가 건전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무용작품도 전황류 〈부채춤〉, 〈장구춤〉, 〈소고춤〉, 〈장검무〉, 무용극〈황우와 우미인〉, 〈시집가는 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명창 박귀희와 김소희는 형님아우 하면서 잘 지냈지만 서로 최고이고 싶어 했고, 서로 전황에게 하소연했었다. 박귀희의 명성이 더 앞섰기에 김소희는 늘 불만이었다. "내가 나이도 위고 소리도 잘 하는데 왜 밤낮 박귀희 다음에 김소희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박귀희는 스스로 김소희만큼 소리가 못하다는 걸 깨닫고 가야금병창으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김소희는 판소리로 지정받았다. 북한출신이고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소외시켰지만 실력으로 춤을 인정 전황은 최승희 선생에게 배운 춤을 바탕으로 창작했으니 내 몸에서는 항시 최선생님의 춤냄새만 난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무용만으론 생활비가 되지 않자 영화사 일도 하고 백조가극단도 봐주고 돈이 되는 일이면 창극단 안무도 하는 등 최승희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춤실력과 안무력을 바탕으로 바쁘게 살았다. 또한 늘 북한콤플렉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의상과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 빨간색이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보자고 하여 누가 안무했느냐? 왜 빨강색 의상이 가운데로 몰리느냐? 꼬치꼬치 따져 마음대로 창작할 수 없었다. 또 남한 무용가들은 '이북에서 온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식으로 질투하기도 했다. 부산피난시절 여성국극단 안무를 할 때 "전황이가 누구냐” 고 하더니 무조건 쇠고랑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간 그에게 "왜 남한으로 넘어왔느냐”면서 간첩취급을 했다. 물론 매번 누나 전옥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출신임을 숨겼지만 전황은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곤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시 김백봉과 남편 안제승도 종로경찰서에 불려갔으며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받았다. 올림픽 때 안무를 맡고 싶었는데, '전황이는 이북에서 왔다'며 그를 추천하지 않아 참여를 못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무용가들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행사안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얻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실력 있다고 알아주었다. 한국민속예술단원 및 안무자로서의 왕성한 해외활동 1958년 국극의 전성기까지 안무가로 활동한 전황은 결혼 후 서울로 이주하여, 1963년 광화문에 신흥무용학원을 내었고, 체계적인 춤교육 덕분에 조교를 두 명이나 두고 지도하였다. 1963년 서울민속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00명의 단원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예그린도 10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말기 멤버로 동참한 전황은 권려성의 후임으로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연출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명동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제1회 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틀 공연은 대박이었다. 흥행사가 붙은 공연은 대전에도 초청됐다. 당시 김백봉은 필동에 연구소를 차렸고, 장추화의 제자 송범은 현대무용을 추었다. 그 후에도 1967년까지 매년 전황 민속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 때도 계속 민속예술단에서 활동했다. 1968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및 출연자로 멕시코 올림픽·일본 공연을 하였다. 송범, 김백봉, 김문숙, 전황 등과 함께 조택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때 전황은 〈부채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 동적인 춤을 안무하고 추었다. 1970년 정부문화사절단 지도위원으로 일본 및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였고, 1971년 정부문화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일본 등 순회공연, 1972년 정부문화사절단 무용총감독으로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24개국 순회공연, 1973년 문공부 파견 일본 신주쿠 고마극장에서 〈춘향전〉 안무와 국립창극단 〈배비장〉 안무를 하였다. 1976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문공부 파견으로 일본 도쿄국제극장 쇼치구가무단의 〈심청전〉을 안무하였다. 1977년 정부문화사절단 유럽 11개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1978년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 한국민속예술단 연출·안무를 맡았으며, 1981년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공연 및 대예술제에 연출·안무로 농악을 올렸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와 해외공연의 안무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을 무대화한 주인공이 바로 전황이다. 한두 시간씩 치는 농악을 15분 정도로 압축해 많은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했다. 김덕수와 최종실 등 사물놀이패가 구성되기 전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좋은 점을 뽑아 50~60명이 오르는 무대농악으로 구성했다. 처음 선보인 건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다. 교방춤과 마당춤을 극장예술로 다듬으면서 극장양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 전황 최승희 제자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한 전황이 어찌하여 무용협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국악협회로 발을 돌렸을까 의문이 든다. 1964년 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을 맡고 14년 동안 국악협회 활동을 하다가 1988부터 1991까지 한국국악협회부이사장으로 활동한 배경도 무용계에서는 북한출신이라는 배타성, 남성이 남성춤을 추지 않고 여성춤에만 치중하는 모습, 성정체성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 된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하는 대한민국국악제를 협회 주최로 이끌어 오는 등 40여 년 동안 한국국악협회에서 역동적인 남성춤을 안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타악과 현악과 성악을 터득하여 국악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1973년 〈배비장〉 안무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여성국악창극단이 활동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창극에서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어서 1999년 중국 베이징 국극공연 〈황진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鼓法) 이수자가 되었다. 고법은 창극단 시절 한일섭과 정철호로부터 조금씩 배워 연주에 참여했던 것을 인정받아 이수증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창작민요극〈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와 창무극〈해상왕 장보고〉를 안무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도 땄다. 일본공연을 자주 가고 일본작품 〈제비〉도 번역할 정도였다. 2002년 문화재청 파견 한·일문화교류의 해 〈천년의 소리〉 일본순회공연 예술총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국립창극단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자문하였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겸임교수로 10년을 출강하여 마지막까지 춤열정을 후학들에게 쏟았다. 그리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대상으로 춤과 국악 생애를 증언하였다. 다만 장년 이후 춤을 많이 추지 않고 안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제자가 많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온 윤성주와 딸 전미례 등이 있고 말년의 제자로는 김지원, 백선희 등이 있을 뿐이다. 전황의 예술세계 전황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문하에서 사사했고, 1951년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사절단으로 각국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민속예술단원과 안무자로 유럽 3회, 동남아시아 2회,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 등 당시엔 한 번 나가기도 힘들다는 외국 공연을 수십 차례 다녔다. 덕분에 국민훈장인 동백장도 받았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6~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널리 업적을 남겼다. 전황이 남긴 예술혼과 예술철학은 몇 가지 굵직한 교훈과 한국공연예술사에 족적을 남겼다. 첫째, 최승희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창작력과 뛰어난 안무력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을 민족적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점이다. "저, 최승희 제자예요. 최승희! 최승희 무혼(舞魂)의 흐름이 제 춤에 들어 있다고요. 그 자부심 하나로 이 땅에서 타협하지 않고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던 최승희가 전통악기를 개량한 악기반주에 맞춰 민족무용과 국극을 안무하고 창작하던 것을 이어받은 전황은 안무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 ‘마당농악’을 ‘무대농악’, ‘민간춤’을 ‘무대춤’ 등으로 민족무대예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북한출신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 이념갈등 속에서도 남한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본인만의 순수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였다. "북한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저를 보자고 하여 마음대로 창작할 수도 없었죠.” 때로는 쇠고랑도 채웠고,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간첩취급도 당하는 등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많이 받았으며, 북으로 넘어간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편견이 상존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남한을 택했고, 굴하지 않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살려보고자 각종 공연예술에 전념하였다. 셋째, 여성편향적 경향과 비중에 편향된 사조에 맞서 외롭게 역동적인 남성예술의 복원과 추구에 앞장서 남녀예술의 균형발전과 공존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최승희 선생께 남성춤, 여성춤을 확연히 구분해 배웠는데, 왜 남성들이 그리 여성스럽게 추는지‥‥‥‥” 여성춤은 곱고 이쁘지만 남자는 남자다운 춤을 추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살풀이춤, 입춤같은 춤을 춘 적도 없고 장검무, 소고춤, 장고춤, 농악춤 등 남성성이 강한 춤을 추고 가르쳤다. 혼자의 힘으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는 남성은 치마(여성)춤만 추지 말고 바지춤을 추어야한다며 남성예술과 여성예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념으로 살았다. 하지만 전황은 이매방이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했다. 60여년 친구이지만 전황은 남자가 여자처럼 춤추는 게 싫었다. 최승희 문하에서 수년 동안 남성춤과 여성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상이 골수에 박힌 그는 춤추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여성화된 춤을 추는 게 못마땅했다. 그때부터 그는 무대가 좋지만 무대에 가급적 서지 않았다. 여성적인 춤을 추는 이들과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딸 전미례가 아버지의 성정체성과 취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때부터는 가끔 서던 무대마저 무대화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전두환 대통령취임식 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넷째, 한민족예술의 본질인 가무악(歌舞樂) 일체사상과 악무극(樂舞劇) 합체사상을 표방하고 심어주었다. "국악을 알아야 무용을 창작할 수 있어! 특히 장단의 귀가 뚫려야 산조를 들을 줄 알아야 춤을 만들 수 있지!” 우리 민족은 원래 국악따로 무용따로가 없이 악가무 일체의 예술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다. 전황은 이러한 민족예술과 춤의 본질적 특성을 올곧게 지닌 예술가였다. 서구예술의 전공분화시대에서 소외됨을 무릅쓰고 총체예술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황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것 한국 신무용의 핵심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에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을 소상히 간직한 전황의 자부심은 귀하고도 올곧았다. 최근까지 남한에 생존해있는 최승희의 대표제자로는 김백봉과 전황뿐이었는데, 유일한 남자제자인 전황선생님의 작고는 신무용시대의 대표적인 적통자이며 전승자의 인맥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최승희의 춤사상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남성춤을 추구해온 근대무용의 산증인이었으며, 무대농악의 창시자이고 국극과 창극에서도 영원한 안무자로 자리매김하여 국악계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등 한국 근대예술사의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끝으로 전황은 예술계의 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 평화주의자이였듯이, 전황은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스타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당시 세계적인 한국무용가 최승희의 남성제자였기에 한국무용계에서 스타반열과 직책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정체성 문제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도 묵묵히 세태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념전쟁의 희생양이었지만 본인만의 색깔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국가, 사회, 문화계에 무언의 항거를 보여주었다. 국악계로 발을 돌려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끝까지 무용계를 탓하지 않았다. "전황류 소고춤, 전황류 검무, 전황류 쌍검무, 전황류 농악을 만들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 그래서 저는 절대로 무대에 오를 때 화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례가 나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품을 때부터 완전히 화장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쉬움도 남는 법이어서 전황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피리 등 관악기만 못해보고 타악과 현악은 웬만큼 해봤지! 그런데 아쉬움이라면 거문고 산조를 못해본 것이 가장 한이 맺혀! 술대로 현을 드르렁 긁는 소리가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멋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상〉국무총리표창(68년), 문화공보부장관 표창(69·70·71·72년), 국민훈장 동백장(73년), 문화공보부장관 감사장(8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공로패(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98년), 문화재청 공로 감사장(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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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학춤과 부산을 그린 풍경극,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은 오는 10월 27일(금)~29(일)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3시 연악당에서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를 3회 개최한다.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체험관 개관을 기념하고 영남권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작품 개발을 목표로 3년 여 만에 새로운 신작을 선보이는 무대다. 그동안 <자갈치아리랑(2011)>, <문디야 문디야(2014)>, <대청여관(2016)>, <구포당숲(2020)> 등 영남의 춤과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춤바람 분데이>는 1945년 해방을 맞고서 첫 3,1절을 기념하여 1946년 3월 1일 잊혀진 ‘동래야류’를 복원하여 춤판으로 벌였다는 故문장원(동래야류 보유자) 구술에 모티브를 받은 작품이다. 동래의 ‘래(萊)’가 거친 지역을 뜻하고 ‘부산(釜山)’이 가마솥 모양의 산을 말하니, 부산에 춤바람이 인다는 건 거친 현실을 훌쩍 날아오르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무형문화’ 유산 가치를 담아 거친 현실을 뛰어 올라 날개 짓하는 동래학춤 소재 <춤바람 분데이>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의 가치가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부산시무형문화재 ‘동래학춤’을 소재로 스토리텔링한 가무악극이다. 극의 내용은 광복 직후, 어수선한 시대배경 속에서 이름도 없이 뒷밀이로 불리던 한 청년이 우연히 ‘동래학춤’ 사진 한 장을 보며 삶이 송두째 바뀌어 춤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춤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창조적 감수성으로 만난 동래학춤의 날개 짓은 녹녹치 않은 현실세계에서 툭하고 불거져 나오는 염원이기도 하다. 그 흥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고 우리 모두에게 춤바람이 스며들기를 기대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작품은 총 6장으로 프롤로그/ 제1장 시시골뒷밀이, 학춤에 반하다/ 제2장 내력 있는 춤꾼을 만나다/ 제3장 춤바람 휘익~/ 제4장 무복을 만나다/ 제5장 춤이라는 목숨 줄 / 제6장 춤 춰!/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대극장 로비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체험관 개관 기념 <춤바람 분데이> 연계 사진전 열어 대극장 로비의 사진전 <춤바람 분데이>는 극의 시·공간적 흐름에 따라 구성해 ‘뒷밀이가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빛바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부산의 켜켜이 쌓인 퇴적 같은 역사의 풍경, 그 속에 지역민의 삶이 녹아있는 신명과 해학이 담긴 무형유산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놀이’와 ‘열린 극’ 형식을 통해 상상력 더욱 자극해 관객 교류성 확장, 놀이판으로 구축된 무대 공간 <춤바람 분데이>는 관객과 함께 마당놀이에서 볼 수 있는 연극적 약속의 놀이를 강화하고, 연주자를 여흥의 적극적인 동참자로 이끔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여 하나의 판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배가 시킨다. 음악 또한 독립성과 개별성이 강조되고, 즉흥의 시나위가 숨을 쉬며 관객의 추임새와 함께 흥을 돋우고 호흡하는 적극적인 교류를 취한다. <춤바람 분데이>는 출중한 창작진들과 국립부산국악원 최고의 출연진이 결합한 작품이다. 부산 출신 안경모 연출과 함께 대본 경민선, 작곡 신동일·김현섭, 안무 김수현, 무대디자인 도현진, 조명디자인 김영빈, 영상디자인 박준, 의상디자인 황연희, 소품디자인 송미영, 분장디자인 백지영 등 전문 제작진과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연주단 70여명의 출연진이 함께한다. 안경모 연출가는 "이번 작품은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으로 흥과 어깨춤, 박수와 추임새는 사랑의 표현이다. 부산시민들 모두가 춤의 흥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었으면 좋겠다.”며 연극적 놀이성을 강화하며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이끌겠다는 연출의도를 밝혔다. 국립부산국악원장은 "개원15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들의 국악체험 공간으로 건립된 국악체험관 개관을 기념하며 마련한 작품이다. 2년 넘게 신규작품 개발과정을 거쳤고, <춤바람 분데이> 제목이 지닌 의미처럼 모두에게 춤바람이 스며들기를, 국악원이 영남권 국립기관으로써 충실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노년층도 청소년층도 아닌 중`장년층의 관람 부담을 덜어줄 파격적인 혜택도 마련했다. 개원15주년을 맞아 "부산시민 30%할인‘ 이벤트를 마련한다. 제휴사 할인(연지동 맛집, 에어부산 항공권)에도 3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할인폭을 높여 관람 부담을 덜었다. 문의)051-811-0114